[Translated by Haeng-Bum Kim]
방법론적 개체주의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아마도 오스트리아학파 및 공공선택학파를 여타의 학파와 가장 크게 구분 짓는 점일 것이다. 개인이 분석의 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공공선택론 및 오스트리아 경제학자들로 하여금 집단주의 경제학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의 많은 실수들을 범하지 않도록 해 주었다. 오스트리아 학파 사람들은 예컨대, 케인스의 이론이 대개 총합의 문제를 무시했었다는 사실로 인해 나타나는 거시 경제의 엄청난 넌센스들을 까발려 왔다. 개인들 간의 상호 작용에, 또 인간의 교환 성향(propensity to truck, barter and exchange)에 바탕을 두고 있는, 시장에 대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관념은 내 견해로는 완전경쟁 모형보다 더 유용하며 또 더 많은 정보를 준다.
뷰캐넌 및 다른 공공선택론 학자들은 정부가 공익에 부합되는 것으로 가정되는 결정들을 내리는 어느 정도 자비로운 독재자라고 서술하는, 집합적 행동에 대한 “유기체적” 관점을 분쇄함으로써 정치과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개선해 왔다.
아주 오래 되지 않은 1968년에 뷰캐넌은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나의 접근 방법과는 다른, 내가 혼란스럽고도 또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접근방법을 취한다. 사회 질서에 관한 내 관점에서는 개인이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며, “정부”란 단지 개인들이 집합적 결정을 내리며, 사적 행동들과 반대되는 집합적 행위를 수행하는 제도들의 복합체일 뿐이다. 정치는 그런 맥락 속에 있는 개인들의 행위이다.1
물론 그 이후로 경제학계는 특히 공공선택론 혁명에 비추어 본다면 엄청나게 변했다. 방법론적 개체주의는 학계에서 집단주의 시각들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승리”가 있었는가는 결코 명확하지 않다. 사회후생함수는 여전히 경제 학술지들을 어지럽히고 있다. 더욱이, 미신적인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권고들은 끝이 없다. 방법론적 개체주의의 주장자들은 큰 걸음들을 내디뎠지만 집단주의자들의 사고 틀은 잘 죽지 않는다.
뷰캐넌은 또한 오랫동안 “시장 과정”(market process)에 관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시각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는 이 점에서 단지 “길 동무”(fellow traveler) 이상이다: 그는 시장을 과정으로 보는 이론과 그 대안인 신고전파의 경쟁적 균형으로 보는 이론을 구별하는 것을 도와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주관적 비용 이론에 대해 출발이 된 그의 연구에 더해, 뷰캐넌은 시장을 과정으로 보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시각을 명백히 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뷰캐넌은 미국 남부경제학회(Southern Economic Association) 회장 연설에서 경제학계가 그 초점을 “자원배분의 이론”(theory of resource allocation)에 초점을 두는 바람에 어떻게 길을 분명히 잃게 되었던가를 설명했다. 상충된 목표들 사이에서 희소한 수단을 배분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 경제학이라고 정의하는 표준적인 신고전파식 정의는 과학적 진보를 이끌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지연시켰다는 것을 그는 강력하게 주장했다.2
뷰캐넌에 의하면 그 이유는 오늘날 많은 경제학 안에는 경제학적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고전파 경제학 전부가 흔히 관련되어 있는 것은 계산 문제, 예컨대 “주관주의자들에겐 바보 같은 일로 보이는” 균형 가격의 계산이다.3
2차 대전 동안 대서양을 건너 석유를 수송하는 유조선의 최적 집합을 연구함으로써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던 노벨상 수장자인 찰링 코프만스(Tjalling Koopmans)가 좋은 예이다. 뷰캐넌은 그런 연구는 경제학이 아니라 공학이라고 이름을 잘 붙여주고 있는데, 그는 “코프만스가 1946년 시카고 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있었을 때 나는 그가 하는 것 안에 경제학적 내용은 절대 없는 것 같았다고 생각했음이 생각나는 걸 보니, 나는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 훨씬 이전에 확고한 주관주의자였음에 틀림없었다.”고 주장한다.4
뷰캐넌은 경제학계가 배분 문제 자체에 고착되어 있는 것을 버릴 것을 경제학계에 설득하고자 노력해 왔는데, 왜냐하면 “만약 경제학에 이 이상의 것이 없다면, 우린 응용수학자들에게 모든 걸 넘기는 게 낫기” 때문이다.5
“이것은 학계가 정말 나아가고 있는 방향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과거 이십년 간 지식의 발전들은 대개는 .... 계산 기법의 향상, 사회공학의 수학적 향상에 있기 때문이다.”6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형태의 인간 활동, 이런 형태의 활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 「즉」 교환의 성향을 반영하는 시장 관계 속의 인간 행동, 그리고 이 관계가 취할 수 있는 구조상의 다양함에 더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상게서 뷰캐넌은 이것이 경제학의 적절한 주제라고 썼다.
이러한 접근은 완전 경쟁에서는 왜 경쟁이(혹은 그 문제와 관련해선 어떤 거래가) 없는가를 우리가 이해하도록 도움을 준다. 그것은 또한 시장이 어떻게 신고전파 모형에서처럼 처음부터 경쟁적인(competitive by definition) 것이 아니라, 시장은 경쟁적인 상태가 되어가는(becoming competitive) 것임을 보여준다. “우리 학문의 중심 부분은 교환 속의 인간 행동의 계속적 압력에 의해 나타나는 이러한 되어져 가는 과정(becoming process)이지 .... 가정된 완전성에 대한 건조한 허튼 소리가 아니다”7
따라서 시장 체계에 대한 뷰캐넌의 시각이 오스트리아 학파로 분류되는 것은 온당하다. 더욱이, 그는 경제 과정에 대한 이와 동일한 생각을 정치 과정에 대한 연구에도 적용할 것을 우리에게 촉구해 왔다. 공공선택 이론이 제도적 과정들을 바꾸는 것에 대개 초점을 두면서, 정치 결과들이나 상태들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 주로 정치 과정에 관한 연구인 이유가 이것이다.
뷰캐넌은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수학자들(적어도 전문 수학자들의 표준에 의하면)이 되기보다는, 자원배분의 이론을 시장이론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한다.
Haeng-Bum Kim is professor of public choice at Pusan National University, Korea. Mises.kr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