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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자비의 13가지 예증

Tags U.S. EconomyCapital and Interest TheoryMonopoly and CompetitionProduction TheoryValue and Exchange

11/20/2018George Reisman

[Translated by Sooyoun Hwang(황수연 역)]

“자본주의의 자비로운 본질(benevolent nature of capitalism)”이라는 말로, 나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과 복지를 증진하며, 모든 사람에 대해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존 로크로부터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아인 랜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위대한 사상가들에 의해 3세기 이상에 걸쳐 전개되어 온 그러한 통찰들이 많이 있다. 나는 그것들 가운데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많이 나의 책 ≪자본주의(Capitalism)≫에 진술하고 있다.

나는 이런 통찰들 가운데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고, 모두 다 합치면 자본주의에 대한 옹호 논거를 거부할 수 없게 한다고 내가 믿는 십여 가지쯤의 것에 관해 간단하게 논하려고 한다. 나의 논의들의 짧음에 대해 내가 사과한다는 점을 말하겠다. 내가 검토하는 통찰들의 각각은 모두 그것 하나하나만으로도 오늘 나에게 이야기하도록 할당된 전 시간보다 더 긴 논의를 필요로 할 것이다. 다행히, 나는, 적어도 나의 책에서, 그것들이 마땅한 만큼 자세하게 내가 그것들을 진술했다고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에 의지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시작하겠다.

1) 개인의 자유―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는 개인적 안전의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 안정의 의미에서도 안정의 기초(the foundation of security)이다. 자유는 물리적 폭력의 개시의 결여(the absence of the initiation of physical force)를 의미한다. 사람이 자유로울 때, 사람은 보통의 범죄로부터 안전한데―위험이 없는데― 왜냐하면 사람이 면하거나 없는 것은 바로 습격과 폭행, 강도, 강간, 그리고 살인과 같은 행위들이고, 이 모든 것들은 물리적 폭력의 개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물론, 더욱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자유로울 때 사람이 정부(the government) 쪽에서의 물리적 폭력의 개시를 면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잠재적으로 어떤 사적인 범죄단의 그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다. (예를 들어, 수백만을 노예화하고 살인한 게슈타포와 KGB는 사적 범죄자들을 그것들에 비해 거의 친절하게 보이게 했다.)

자유가 물리적 폭력의 개시의 결여라는 사실은 또한 평화(peace)가 자유의 계(系)라는 점도 의미한다. 자유가 있는 곳에는, 평화가 있는데, 왜냐하면 폭력의 사용이 없기 때문이다. 폭력이 개시되지 않는 한, 방어하거나 보복하느라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

자유에 의해 제공되는 경제적 안정(economic security)은, 자유 아래서는, 자기 자신이 물리적 폭력의 사용을 개시하지 않는 한,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는 무엇이든 하기로 모든 사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예를 들면, 이것은 그가 자기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보수가 높은 직업을 잡을 수 있고, 자기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경쟁적인 공급자로부터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는 자기가 버는 모든 소득을 간직할 수 있고, 그것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만큼 많이 저축할 수 있으며, 자기의 저축을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이문이 있는 방식으로 투자할 수 있다. 그가 할 수 없는 단 한 가지는 스스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폭력의 사용이 금지되므로, 개인이 자기가 버는 돈을 증가시키는 방법은 바로 그 돈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더 많거나 더 좋은 재화들과 서비스들을 제공할지 알아내는 데 자기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을 부추겨 경쟁자들에게서보다는 자기에게서 사는 데 자발적으로 그들의 자금을 더 많이 쓰게 할 수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이성과 자기의 공급자들의 이성의 행사로 가능한 최대한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기초이다.

2) 자연에 관한 지식 증가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물리력 증가에도 근거하여, 사실상 무한한 것, 즉 자연(自然)의 더 큰 부분을 사람이 경제적 재화와 부로 전환함에 따라, 경제적으로 쓸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자연 자원들의 공급의 지속적인 증가가 가능하다. (이 중요한 점을 세밀하게 다듬은 것에 대해서는, ≪계간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저널(The Quarterly Journal of Austrian Economics)≫의 2002년 여름 호에 있는 “멩거와 미제스의 관점에서 본 환경보호주의(Environmentalism in the Light of Menger and Mises)”를 보라.)

3) 생산과 경제 활동은, 그것들의 바로 그 본질상, 사람의 환경을 개선하는(improve man’s environment) 데 이바지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물리학과 화학의 관점으로부터는, 생산과 경제 활동이 이루어져 있는 모든 것이 자연에 의해 주어져 있는 바로 그 화학 원소들의 다른 화합물들로의 재배열이고, 다른 지리적 위치들로의 그것들의 이동이기 때문이다. 이 재배열과 이동의 지도적인 목적은 본질적으로 화학 원소들을 인간의 삶과 복지에 대해 향상된 관계에 있게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화학 원소들을 그것들이 인간들에게 더 큰 효용, 더 큰 편익을 제공하는 화합물들과 위치들에 넣는다.

예를 들어, 철과 구리 같은 화학 원소들이 인간의 삶과 복지에 대해 가지는 관계는 그것들을 땅 밑에서 캐내어 자동차, 냉장고, 그리고 전선과 같은 제품들에 나타나게 할 때 크게 향상된다. 탄소, 수소, 산소, 그리고 질소와 같은 화학 원소들이 인간의 삶과 복지에 대해 가지는 관계는 그것들이 전광과 전력을 산출하게 될 수 있을 때 향상된다. 한 뙈기의 땅이 인간의 삶과 복지에 대해 가지는 관계는, 그가 그 위 침낭 안에서 자면서 뱀, 전갈, 그리고 기타 야생 동물들을 조심해야 하는 대신에, 그 위에 지어져 있고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모든 (전기, 수도, 가스 등의) 시설들과 가전제품들을 가지고 있는 잘 건축된 현대 주택 안에서 그가 잘 수 있을 때 향상된다. 화학 원소들이 인간에 대해 가지는 관계에서 화학 원소들의 전체는 인간의 외부적, 물질적 환경을 구성하는데, 바로 이것은 생산과 경제 활동이, 그것들의 바로 그 본질상, 개선하는 데 이바지하는 그것이다.

4) 오직 자본주의 아래서만 고도로 발전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주요 특징인 분업은, 주요 편익들 가운데서도, 생산 과정에 들어가는 지식의 양의 증식과 그것의 계속적이고 점진적인 증가로부터의 막대한 이득을 제공한다. 그저 각각의 뚜렷이 구별되는 직업, 각각의 하위 직업이 자기 자신의 뚜렷이 구별되는 지식 본체(body of knowledge)를 가지고 있음을 고려해 보기만 하라. 분업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뚜렷이 구별되는 직업들이 있는 만큼 많이, 생산 과정에 들어가는 뚜렷이 구별되는 지식 본체들이 있다. 이 지식의 전체는 각 개인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생산되는 제품들을 살 때 소비자로서의 자격에서―그리고 그의 생산이 전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생산된 자본재의 사용에 의해 도움을 받는 한, 그 지식의 많은 부분 혹은 대부분은 또한 생산자로서의 자격에서도―그 개인에게 이익이 되게 작동한다.

따라서 어떤 주어진 사람은, 말하자면, 목수로서 일할지 모른다. 그의 전문화된 지식 본체는 목수일의 그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로서의 자격에서, 그는 전 경제 체제에 걸쳐 뚜렷이 구별되는 모든 다른 직업들의 편익을 얻는다. 그러한 광범위한 지식 본체의 존재는 많은 제품들―그 생산에서 어떤 한 개인이나 소수의 개인들이 보유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 모든 제품들―의 바로 그 존재에 필수적이다. 물론 그러한 제품들은, 광범위한 분업과 그것이 나타내는 거대한 지식 본체가 없었더라면 도저히 생산될 수 없었을, 기계류를 포함한다.

더군다나, 분업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천재들과 크게 능력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가장 영리하고 야망 있는 사회 성원들의 대부분은 생산에 적용되는 지식의 양을 점진적으로 높이고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영역들에 집중한다. 이것은 그러한 개인들이 과학, 발명, 그리고 사업과 같은 영역들에 집중하는 효과이다.

5) 적어도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시대 이래로,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경제 체제의 모든 부문들에 걸쳐 자본에 대한 이윤율, 혹은 수익률이 균일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왔다. 수익률이 평균을 넘는 곳에서는, 그것은 투자 증가의 유인과 또한 수단도 제공하고, 따라서 더 많은 생산과 공급을 제공하는데, 이것은 그 다음 가격과 수익률을 감소시키도록 작용한다. 수익률이 평균에 미달하는 곳에서는, 그 결과는 투자 감소와 생산 및 공급의 감소인데, 이윤과 수익률의 상승이 뒤를 잇는다. 따라서 높은 이윤율은 내려가고 낮은 이윤율은 올라간다.

이 원리의 작동은 자본주의 경제의 상이한 부문들을 서로 적절히 균형이 되게 유지하는 데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소비자들에게, 폰 미제스의 말을 사용하면, 그저 그들의 구매와 구매 회피 패턴(pattern of buying and abstention from buying)만에 기초하여, 다양한 산업들의 상대적인 크기를 결정할 힘을 주는 데도 이바지한다. 소비자들이 더 많이 쓰는 곳에서는, 이윤이 올라가고, 그들이 덜 쓰는 곳에서는, 이윤이 떨어진다. 더 높은 이윤에 반응하여, 투자와 생산이 증가되고, 더 낮은 이윤이나 손실에 반응하여, 그것들은 감소된다. 따라서 투자와 생산의 패턴은 소비자 지출의 패턴을 따르게 된다.

아마도 더욱더 중요하게, 균일한 자본 수익률로의 경향의 작동은 제품과 생산 방법에서 점진적인 개선의 패턴을 초래하는 데 이바지한다. 어떤 주어진 기업도, 소비자들이 사기를 원하는 새롭거나 향상된 제품이라든지, 기존 제품을 생산하는 더 효율적이고 더 비용이 낮은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평균을 넘는 수익률을 벌 수 있다. 그러나 그 때에는 그것이 누리는 높은 이윤은 경쟁자들을 끌어들이고, 일단 혁신이 일반적으로 채택되게 되면, 높은 이윤은 사라져서, 그 결과 소비자들이 혁신의 완전한 편익을 얻는다. 그들은 결국 더 나은 제품을 얻고 더 낮은 가격을 지불하게 된다.

만약 그 혁신을 한 기업이 이례적인 이윤율을 계속해서 벌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추가적인 혁신들을 도입해야 하는데, 이것은 결국 동일한 결과로 낙착된다. 긴 기간 동안 높은 이윤율을 버는 데는 계속적인 일련의(series) 혁신들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한데, 소비자들은 가장 최근의 것들까지 모든 혁신들의 완전한 편익을 얻게 된다.

6) 폰 미제스가 보여주었듯이, 물론 자본주의인 시장 경제에서,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는 모든 사람에 이익이 되도록, 소유자들뿐만 아니라 비소유자들(nonowners)에게도 이익이 되도록, 작동한다. 비소유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소유하는 생산 수단의 편익을 얻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런 생산 수단의 제품들을 삼에 따라, 그리고 살 때, 이 편익을 얻는다. 제너럴 모터스의 공장과 그들의 장비의 편익이라든가 엑손의 유전, 송유관, 그리고 정유소의 편익을 얻기 위해, 내가 그런 기업들의 주주나 채권 보유자가 될 필요는 없다. 나는 단지 그들이 생산하는 자동차나 휘발유나 기타 등등을 살 입장에 있기만 하면 된다.

더군다나, 내가 잠시 전에 설명했던 이윤율이나 수익률의 균일성 원리의 동태적이고 점진적인 측면 덕분에, 사적으로 소유되는 생산 수단이 비소유자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편익은, 그들이 점진적으로 떨어지는 실질 가격에 늘 더 많고 더 좋은 제품들을 살 수 있게 됨에 따라, 끊임없이 증가한다. 이 점진적인 이득과 그것이 전환되는 일반적인 생활수준 상승이 치명적으로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 이윤 동기, 그리고 경제적 경쟁의 자본주의 제도들에 달려 있고, 그것들 없이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하게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생활수준을 올리는 데서 발휘되는, 동기가 부여되고 효과적인, 개인 진취성의 기초가 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다.

7)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로부터 얻는 일반적 편익의 계(系)는 상속 제도로부터의 일반적 편익(the general benefit from the institution of inheritance)이다. 상속인들뿐만 아니라 비상속인들(nonheirs)도 그것의 존재로부터 편익을 얻는다. 비상속인들이 편익을 얻는데, 왜냐하면 상속 제도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상속인들에의 전달을 위해 자본을 축적하고 유지할 마음이 나게 하는 정도로, 저축과 자본 축적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이 여분으로 축적된 자본의 존재의 결과는 시장을 위해 생산하는 더 많은 생산 수단들과, 따라서 모든 사람이 살 더 많고 더 나은 제품들이다. 물론, 추가적인 자본의 효과는 또한 추가적인 노동 수요와, 따라서 더 높은 임금률이기도 하다. 노동 수요는 모든(all) 사적 소유 생산 수단이 비소유자들에게 이롭게 작동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점이 인식되어야 한다. 자본은 제품 공급뿐만 아니라 노동 수요의 기초도 된다.

8) 자본주의 아래서는, 한 사람의 이득은, 그것이 전반적인 총 소득의 증가에서 생기는 한, 다른 사람의 손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가장 중요한 경우들, 즉 큰 산업 재산(great industrial fortunes)의 형성의 경우들에는―한 사람의 이득은 긍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득(gain)이기도 하다. 이것은 큰 재산을 형성하는 단순한 산술적 요건들이 긴 기간 동안 자본에 대한 높은 수익률의 획득과, 매년, 번 이윤의 훨씬 더 큰 부분의 저축과 재투자의 결합이라는 사실의 결과로서 생긴다.

우리가 보았듯이, 경쟁에 직면해 있을 때, 긴 기간 동안 높은 이윤율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중대한 혁신들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혁신들은 소비자들에 대한 더 낫고 덜 비싼 제품들을 나타낸다. 그 혁신들에서 번 이윤의 저축과 재투자는 생산 수단의 축적이 되는데, 이것 역시 소비자들에게 봉사한다. 따라서 그것의 원천인 높은 이윤에서뿐만 아니라 그것의 처분인 자본의 축적에서도, 큰 산업 재산은 일반 소비 대중에게 해당 이득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옛날의 헨리 포드가 1903년 25,000달러의 자본을 가지고 시작해서 1946년 10억 달러의 자본으로 끝마친 것은 보통 사람이―대개 포드의 10억을 나타내는 공장들에서 생산된―크게 향상되고 훨씬 더 효율적으로 생산된 자동차들을 살 수 있게 된, 동전의 다른 면이었다.

9) 폰 미제스가 보여주었듯이, 자본주의 아래에서 일어나는 경제적 경쟁은 동물의 왕국에서 지배하는 생물학적 경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실상, 그것의 성격은 정반대(opposite)이다. 동물 종은, 희소하고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생존 수단에 직면하고, 그 종은 그 공급을 증가시킬 수 없다. 인간은, 자기의 이성 소유 덕분에, 자기의 생존과 복지가 달려 있는 모든 것의 공급을 증가시킬 수 있다. 따라서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필수품들의 한정된 공급량을 남보다 먼저 낚아채려고 노력하며, 강자가 승리하고 약자가 멸망하는 동물들의 생물학적 경쟁 대신에, 자본주의 아래에서 경제적 경쟁은 누가 물건들의 공급을 가장 많이 증가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경쟁이고, 그 결과로 실제로 모든 사람이 더 오래 그리고 더 낫게 생존한다.

얼룩말과 가젤 같은 동물들의 한정된 공급량을, 자기들의 감각과 사지(四肢)의 힘을 수단으로, 얻으려고 경쟁해야 하는, 정글의(역주: 사바나가 더 정확하다. 이런 동물들은 밀림이 아니라 사바나에서 사는 동물들이다) 사자들과 전적으로 다르게, 자본주의 아래에서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의 수중에 있는 달러들(dollars)의 한정된 공급량을 얻으려고 경쟁하고 있고, 그들은 자기들의 마음(minds)이 고안할(devise) 수 있는 가장 좋고 가장 많은 경제적 제품들을 제공하는 것을 수단으로 그것들을 얻으려고 경쟁한다. 그러한 경쟁은 새롭고 추가적인 부를 긍정적으로 창출하려는 경쟁이므로, 그것의 결과로 진정한 장기적인 패배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승리자들만 있다.

농부들과 농기구 제조업자들의 경쟁은 배고픈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이 먹고 강해질 수 있게 한다. 제약업체들의 경쟁은 병자들이 자기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게 한다. 안경과 보청기 제조업자들의 경쟁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보거나 들을 수 없었을 많은 사람들이 보거나 들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그 결과가 “최적자 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인 경쟁이기는커녕, 자본주의의 경쟁은 더욱 정확하게는 그 결과로 모든 사람들이 생존하는, 혹은 적어도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더 길고 늘 더 낫게 생존하는 경쟁으로서 서술된다. 오직 “최적자”만이 생존한다는 말의 유일한 의미는 살아남는 것이 가장 적합한 제품들(products)과 가장 적합한 생산 방법들(methods of production)이라는 것인데, 그러한 것들도 더욱더 적합한 제품들과 생산 방법들에 의해 대체되기 전까지이고, 인간 생존에 미치는 그 효과들은 방금 서술되었다.

폰 미제스가 또한 리카도의 비교 우위의 법칙(law of comparative advantage)을 제휴의 법칙(law of association)으로 전개하여 보여주기도 했듯이, 자본주의의 경쟁에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회(room for all)가 있다. 심지어 모든 측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능력이 덜한 사람들조차도 호기(好機)를 가지고 있다. 사실상, 대개,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경쟁은, 인간들 사이의 갈등의 문제이기는커녕, 분업(division of labor)이라고 알려져 있는 그 하나의 거대한 사회 협동 체제(system of social cooperation)를 조직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 사회 협동 체제의 무슨 지점에서 각 개인이 자기의 구체적인 공헌을 할 것인지―예를 들면, 누가 얼마나 오랫동안 산업의 선장이 될 것이고, 누가 청소원이 될 것이며, 누가 그 사이의 모든 직위들을 채울 것인지―결정한다.

이 경쟁에서, 각 개인은, 자기의 능력이 아무리 제한되어 있다 할지라도, 자기의 특별한 호기에 대해서는, 모든 다른 사람들과, 그들이 자기들의 능력에서 그보다 아무리 우수하다 할지라도, 겨룰 수 있다. 아주 문자 그대로, 그리고 일상사로서, 청소원이 되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생산 천재들(productive geniuses)과―청소원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for the job of janitor)―수월하게, 의문의 여지없이, 겨룰 수 있다. 예를 들면, 빌 게이츠가 아주 우수한 사람일지 몰라서, 그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에 덧붙여서, 똑같은 시간에 지금 살고 있는 어떤 청소원이든 할 수 있는 것의 다섯 배만큼 많은 평방피트의 사무실 공간을 청소할 수 있고, 그것을 더 잘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운영해서 시간당 백만 달러를 벌 수 있고, 청소원들은, 말하자면, 시간당 10달러에 기꺼이 일한다는 것이 알려질 수 있다면, 게이츠가 요구할 시간당 임금의 10만 분의 1에 그들이 그 직을 기꺼이 수행한다는 것은 그들의 작은 능력을 아주 작아보이게 해서 이 경우 “무시험 전형 합격(hors de concours)”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다.

동시에, 생산 천재들이 자유롭게 제품들과 생산 방법들에 대변혁을 일으키는 데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청소원이 되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식품, 의복, 그리고 주거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동차, 텔레비전,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와 같은 제품들도, 그들이 자력으로는 그것들의 바로 그 존재를 아마도 결코 꿈도 꾸지 못했을 제품들도, 누릴 수 있다.

경쟁과 관련된 손실은 기껏해야 그저 단기적인 손실일 뿐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에 의해 폐업하게 된 대장장이들과 말 사육자들이 일단 비슷한 수준의 다른 일자리들을 발견하면, 자동차가 그들에게 미치는 유일하게 지속적인 효과는 그들도 역시, 소비자로서의 자격에서, 말에 비해 자동차의 이점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비슷하게, 트랙터를 사용하는 농부들의 경쟁에 의해 폐업하도록 내몰리게 되는, 노새를 사용하는 농부들은 기아로 죽지 않고 그저 자기들의 일자리를 바꾸어야 할 뿐이었고, 그들이 그렇게 했을 때, 그들은 다른 모든 사람과 더불어 식품뿐만 아니라 다른 제품들의 더욱 풍부한 공급량도 누렸는데, 그 다른 제품들은 바로 농업에서 해방된 노동에 기초하여 생산될 수 있었다.

심지어 고립된 경쟁으로 어느 개인이 자기 인생의 나머지를 자기가 전에 누렸던 것보다 더 낮은 지위에서 보내야 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4륜 마차 채찍(buggy-whip) 공장의 소유주가 자동차에 의해 폐업되게 된 후에 자기 인생의 나머지 동안 평균적인 임금 소득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끝나는 사례들에서조차도, 심지어 그도 경쟁이 자기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없다. 그가 주장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는 최대한도는, 이 시점부터는, 자기가 경쟁으로부터 얻는 막대한 이득이 자기가 이전에 그것으로부터 얻었던 더욱더 막대한 이득보다 더 적다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경쟁은 그가 계속해서 구입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생산과 공급의 기초가 되는 것이고, 그와 그 밖의 모든 사람의 소득의 모든 달러가 가진 구매력의 원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그것[경쟁]은 그의 실질 소득을 그것[경쟁]이 저지되었던 수준으로부터 올리기 시작한다. 참으로, 자본주의 아래서는, 경쟁은 평균적인 임금 소득자의 생활수준을 심지어 몇 세대 전에는 세계에서 정말 가장 부유했던 사람들의 생활수준 이상으로도 올리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에서 평균적인 임금 소득자는, 아마도 하인들을 고용할 능력을 제외한 모든 측면에서,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의 생활수준보다도 더 높은 생활수준을 가지고 있다.)

10) 그건 그렇고, 다시 한 번 미제스의 공(功)으로,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계획 없는 혼란과 “생산의 무정부 상태(anarchy of production)”이기는커녕, 실제로는 가질 수 있는 최대한으로 철저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계획되는 경제 체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진행되는 계획은, 거의 그렇게 인식되지 않지만, 경제 체제에서 각 개별 참가자(each individual participant)가 세우는 계획이다. 자기에게 이익이 될 경제 활동의 방침과 그것을 수행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모든 개인은 경제 계획에 종사하고 있다. 개인들은 집, 자동차, 가전제품, 그리고 참으로 심지어 식료품도 사기로 계획한다(plan). 그들은 무슨 직업 훈련을 받을지 그리고 자기들이 소유하는 능력을 어디에 제공하고 적용할지 계획한다. 기업들은 새로운 제품들을 도입하거나 기존 제품들을 중단하기로 계획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산 방법들을 바꾸거나 자기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방법들을 계속해서 사용하기로 계획한다. 그들은 지점들을 열거나 지점들을 폐쇄하기로 계획한다. 그들은 새 근로자들을 고용하거나 자기들이 현재 고용하고 있는 근로자들을 해고하기로 계획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고를 증가시키거나 자기들의 재고를 줄이기로 계획한다.

사적인 개인들과 기업들에 의한 관례적이고 일상적인 경제 계획의 더욱더 많은 예들이 발견될 수 있다. 사적인 경제 계획은 우리 주변 모든 곳에 있고, 모든 사람은 그것에 종사한다. 그러나 미제스의 학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미제스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경제 계획은 정부의 영역이다.

막대한, 만연한 경제 계획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모두 조정되고(coordinated), 통합되고(integrated), 조화되어(harmonized) 응집력 있게 계획되는 경제 체제를 낳는다. 이것이 달성되는 수단은 가격 체제(the price system)이다. 사적인 개인들과 기업들의 모든 경제 계획은 가격들―비용을 구성하는 가격들과 수입이나 소득을 구성하는 가격들―의 고려 사항을 기초로 하여 일어난다. 어떤 종류든 재화나 서비스를 사기로 계획하는 개인들은 항상 그런 재화들과 서비스들의 가격들을 고려하고, 가격 변화에 직면하여 자기들의 계획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재화나 서비스를 팔기로 계획하는 개인들은 항상 자기들의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자기들이 기대할 수 있는 가격을 고려하고, 또한 가격 변화에 직면하여 자기들의 계획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기업들은 자기들의 계획을 판매 수입뿐만 아니라 비용의 고려 사항에도, 따라서 양자를 구성하는 해당 가격의 고려 사항에도, 근거하고, 수익성의 변화에 대응하여 자기들의 계획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따라서 예를 들면 나의 아내와 내가 처음 캘리포니아로 이사했을 때, 우리의 주택 계획은 태평양을 굽어보는 언덕 위 높은 곳에 집을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집들의 가격을 알게 된 후에, 우리는 재빨리 우리가 우리의 주택 계획을 수정해서 대신 몇 마일 내륙의 집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주택 계획을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계획들과 조화되게 하는 방식으로 바꿀 마음이 들게 되었는데, 이 사람들도 역시 우리가 원래 사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종류의 집을 사기로 계획했지만, 덧붙여서, 우리가 기꺼이 썼고 쓸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자기들의 계획들에 기꺼이 썼고 쓸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더 높은 호가(呼價)들과 그런 호가들에 관한 우리의 고려는 우리의 주택 계획을 그들의 것들과 조화시켰다.

비슷하게, 순진한 대학 1학년 학생은 자기에게 중세 불문학이나 르네상스 시를 전공하도록 요구하는 경력 계획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의 2학년 시작 전 언젠가, 그는 만약 자기가 그러한 경력 계획을 고집하면 자기가 초라한 작은 방에서 굶주리며 일생을 보낼 것을 예상할 수 있다고 깨닫게 된다. 반면에, 만약 그가 자기의 경력 계획을 바꾸어 회계학이나 공학과 같은 분야를 전공하면, 그는 매우 안락하게 살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경력 계획과 전공을 바꾼다. 유망한 소득이라는 고려 사항을 기초로 하여 자기의 경력 계획을 바꿀 때, 그 학생은 경제 체제의 다른 사람들의 계획들과 잘 일치하는 변경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계획들의 실행은 그것이 문학 전문가들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회계사들과 공학자들의 서비스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예: 소비자들은 자기들의 식사 계획을 바꾸고, 따라서, 말하자면, 생선과 닭고기를 더 많이 먹고 (소ㆍ양ㆍ돼지고기 등, 살이) 붉은 고기(red meat)를 더 적게 먹기로 계획한다. 이것은 그들의 구매와 구매 회피 패턴에서 상응하는 변화로 귀착한다. 이제, 자기들의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슈퍼마켓들과 식당들은 자기들의 팔 물건들을 바꾸기로, 즉 생선과 닭고기 그리고 자기들이 공급하는 생선과 닭고기 앙트레나 샌드위치의 각각의 양들을 증가시키고, 붉은 고기 그리고 자기들이 공급하는 붉은 고기 앙트레나 샌드위치의 양들을 감소시키기로 계획해야 한다. 슈퍼마켓들과 식당들 쪽에서의 이러한 계획 변경들은, 그리고 상응하는 구매 변경들은, 전 경제 체제가 소비자들의 계획들과 구매들에서의 변경과 일치하도록 충분히 재계획되었을 때까지, 그들의 공급자들 쪽에서, 그리고 그들의 공급자들의 공급자들 쪽에서, 등등으로 추가적인 계획 변경들과 구매 변경들로 귀착된다.

가격 체제와 그것이 모든 개인들의 쪽에 일으키는 비용과 수입의 고려는 경제 체제가 수요나 공급의 변화에 대응하여 이득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극소화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재계획되게 하고, 각각의 개별 생산 과정이 경제 체제의 나머지에서의 생산에 최대로 이로운 방식으로 계속되도록 보장한다. 예를 들면, 원유 공급의 감소의 결과로, 원유와 석유 제품들의 가격의 상승이 있을 것이다. 모든 개별 구매자들은 높아진 가격을 자기들 자신의 구체적인 상황―소비자들의 경우, 자기들 자신의 필요와 욕망, 기업들의 경우, 그 증가를 고객들에게 전가하는 그들의 능력―과 관련하여 고려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구체적으로 자기들에게 이용 가능한 석유나 석유 제품들의 사용에 대한 대안들을 고려할 것이다. 따라서 자기의 개별적인 사고와 계획을 기초로 하여, 참가자들 각각은 그 품목들의 수요를 자기의 복지를 최소한으로 손상시키는 방식으로 줄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석유나 석유 제품들을 사용하는 모든 경제 체제 참가자들의 사고와 계획은 석유와 석유 제품들의 수요량이 그것들의 가격의 상승에 대응하여 어디에서 그리고 얼마나 많이 줄어드는지의 결정에 들어갈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공급의 상실에 그 상실을 극소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한 사례이다. 공급의 감소는 이전에 더 큰 공급이 충분했던 고용들 중 가장 덜 중요한 고용에서 그것의 사용의 대등한 감소를 수반할 것이다.

비슷하게, 가격 체제와 모든 참가자들의 개인적 사고와 계획은 어떤 희소한 생산 요소든 공급 증가로부터 이득의 극대화를 야기한다. 추가적인 공급은 그것이 가장 높게 평가되는, 즉 그것이 최소의 가격 하락으로 흡수될 수 있는, 용도들에 흡수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자본주의가 철저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계획되고, 경제적 조건들의 변화에 대응하여 계속적으로 재계획되는 경제 체제인 반면에, 미제스가 보여주었듯이, 사회주의는 합리적인 경제 계획을 할 수 없다. 가격 체제와 그것의 기초들, 즉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 이윤 동기, 그리고 경쟁을 파괴할 때, 사회주의는 합리적 경제 계획에 필수적인 지적인 분업을 파괴한다. 그것은 경제 체제의 계획이, 오직 전지한 신(神)만이 소유할 수 있을, 단일 마음속의 나눌 수 없는 전체로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불가능한 요구를 한다.

사회주의가 나타내는 것은 합리적인 경제 계획에서 아주 멀어서 그것은 실제로 합리적인 경제 계획의 금지(prohibition)이다. 우선, 그것의 바로 그 본질상, 그것은 독재자와 중앙 계획 위원회의 기타 구성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제 계획을 금지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두뇌들이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아는 전지한 신들의 능력을 달성할 수 있다고 터무니없고 사실상 제정신이 아니게 믿고서, 계획에 관한 독점 특권을 누릴 수 있다. 그들은 그럴 수 없다. 따라서 사회주의가 실제로 나타내는 것은 수천만과 수억, 참으로 수십억의 사람들의 사고와 계획을 한 사람이나 기껏해야 그저 한 줌의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이다. 그것의 본질상, 그렇게 적은 사람들의 두뇌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이러한 시도가 성공의 가망이 없는 것은 그렇게 적은 다리들(legs)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떠받치는 수단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성공의 가망이 없는 것과 같다. 합리적인 경제 계획을 가지기 위해서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와 가격 체제라는 환경에서 작동하는, 즉 자본주의에서 작동하는, 모든 사람들의 독립적인 사고와 계획이 필요하다.

11) 나는 이제 독점의 주제에 착수한다. 사회주의는 독점의 체제다. 자본주의는 자유와 자유 경쟁의 체제다. 미제스가 지적했듯이, 음료수, 경작에 알맞은 토지, 그리고 실제적으로 모든 광물들의 접근 가능한 공급량과 같이, 본질적인,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인간 생활 요건들은 전형적으로 아주 대량으로 이용 가능하여 이용 가능한 원천들 모두가 이용될 수 없다. 필요하게 될 노동은 이용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더욱 생산적인 토지 뙈기들과 광물 매장량들이나 제조업과 상업의 수많은 운영들에 고용되는데, 후자에서는 그것의 고용이 시장 가격들에 의해 농산물들이나 광물들의 추가적인 공급량보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입증된다.

이런 조건들에서는, 그리고 정부 간섭이 없을 때는, 어떤 생산자든(혹은 생산자들의 결합이든) 어떤 것의 유일한 공급자가 될 수 있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그가 부과하는 가격이 아주 낮아서 다른 잠재적인 공급자들이 그 분야에 들어가는 것을 가치 있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유일한 공급자의 지위는 가격의 낮음에 의해 확보되지, 높은 가격을 부과할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본질적인 점은 다액의 자본을 투자할 필요가 공급자들의 수를 급격하게 줄이는 사례들에도 적용된다. 여기에는 큰 자본이 필요한데, 낮은 판매 가격에서 이문이 있기 위해서 필요한, 단위당 낮은 생산 비용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독점은 실제로 정부 개입의 결과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한 시장 혹은 한 시장의 일부를 물리적 폭력의 개시를 수단으로 한 사람 혹은 그 이상의 공급자들에게 유보하는 것이다. 배타적인 정부 독점 판매권(franchises), 보호 관세, 그리고 면허제 법률들이 예들이다.

12) 자본주의는 실질 임금의 점진적인 상승, [근로] 시간의 단축, 그리고 근로 조건의 향상의 체제이다.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반대로, 사업가들과 자본가들은 원래 모두 임금이었다고 주장되는 것에서나, 자연적으로 그리고 정당하게 모두 임금이라고 주장되는 것에서, 이윤을 공제하지 않는다. 원래의 그리고 주된 소득 형태는 이윤(profit)이지, 임금이 아니다. 애덤 스미스의 “초기의 야만의 사회 상태(early and rude state of society)”에서나 카를 마르크스의 “단순한 유통(simple circulation)”에서는 제품들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육체노동자들은 임금이 아니라 판매 수입을 벌었다. 사람이 한 조각의 빵이나 한 켤레의 신발 혹은 어떤 다른 제품이든 팔 때, 사람은 임금이 아니라 판매 수입을 지불받는다. 그리고 그 육체노동자들이 자본가로서 행동하지 않았다는, 즉 판매를 위해서 산 것이 아니라 단지 소비자로서만 지출했다는,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은 자기들이 팔았을지 모르는 무슨 재화든 생산하는 수단에 대해서는 지출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의 판매 수입에서 공제할 어떠한 화폐 비용도 부담하지 않았다. 즉 자기들의 판매 수입의 완전한 크기는 이윤이었지, 임금이 아니었다. 이윤이 원래의 그리고 주된 노동 소득 형태라는 점이 드러난다.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반대로, 자본재의 수요와 더불어 임금의 현상이 존재하게 되는 것은 오직 자본가들의 도래와 자본의 축적을 가지고서뿐이다. 임금과 자본재 지출 양쪽 다 판매 수입에서 공제되어야 하는 생산의 화폐 비용으로서 나타난다. 더 큰 부분이 판매 수입에 비해 판매 수입을 벌기 위한 구매라는 의미에서, 경제 체제가 경제적으로 더 자본주의적일수록, 판매 수입에 비해 임금과 기타 비용들이 더 높아지고, 따라서 판매 수입에 비해서뿐만 아니라 임금에 비해서도 이윤이 더 낮아진다. 바꿔 말하면, 자본가들이 책임을 지는 것은 이윤 현상의 창출과 임금에서의 그것의 공제가 아니라, 임금과 화폐 비용 현상의 창출과, 원래 모두 이윤이었던, 판매 수입에서의 그것들의 공제이다. 자본가들은 임금의 창출과 판매 수입 가운데서 이윤을 나타내는 부분의 감소에 책임이 있다. 자본가들이 더 수가 많아지고 더 부유해질수록, 이윤에 비해 임금이 더 올라간다.

어떤 더 나은 대안도 없을 때 임금 소득자들이 최저 생존을 위해 기꺼이 일할지 모르고, 어떤 다른 구매자와 같이 사업가들과 자본가들도 더 많이 지불하기보다 더 적게 지불하기를 선호한다는 사실은 진실인 명제들이지만, 임금 소득자들이 실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임금들의 결정과 전적으로 무관하다. 그런 임금들은 노동을 얻기 위한 고용주들의 경쟁에 의해 결정되는데, 노동은 경제 체제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유용한 성분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희소하기도 하다.

그 경쟁에서, 어떤 고용주든 임금률이 문제의 지역에서 문제의 종류의 노동의 완전 고용에 해당하는 지점 밑으로 내려가게 허용하는 것은 자기 이익에 반한다. 그러한 낮은 임금률은 노동 수요량이 이용 가능한 공급량을 초과한다는 것, 즉 해당 노동의 부족(shortage)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의 부족은 동일한 한 품목에 대해 여전히 둘 이상의 입찰자들이 있는 경매에 비교될 수 있다. 그 품목을 가장 원하는 입찰자가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의 경쟁자들보다 더 비싼 값을 불러 그 품목을 그들에게 너무 비싸게 하는 것인데, 그래서 그들은 옆으로 비켜야 하고 그가 그 품목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노동 시장에서는 수천만이나 심지어 수억의 근로자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노동의 희소성은 그 수보다 훨씬 더 많은 근로자들을 위한 잠재적인 일자리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각각이 적어도 열 명의 다른 사람들의 노동의 편익을 바랄 것이라는 사실은 노동의 희소성의 정도의 암시로서 간주될 수 있다.

임금률이 해당 종류의 노동의 완전 고용에 해당하는 지점 밑으로 내려갈 때, 그 더 높은 율을 지불할 수 없거나 기꺼이 지불하지 않는 고용주들이 그 더 높은 율을 지불할 수 있고 기꺼이 지불하는 다른 고용주들의 희생으로 노동을 얻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그 상황은 경매에서 자기가 원하는 품목을 다른 더 약한 입찰자에게 잃는 일에 직면하는 더 강한 입찰자와 정확하게 똑같다. 자기가 필요로 하는 노동을 얻는 방법은 호가를 올려서 더 약한 고용주들의 경쟁에 이기는 것이다.

최고 가격이 노동에 부과될 때 나타나는 노동 부족에 직면하여 고용주들은 실제로 자기들의 고용인들과 공모하여, 가짜 승진을 나눠줌으로써, 임금 통제의 정신을 회피한다. 이것으로 그들은 사실상 자기들이 통제를 위반하고 있을 때 자기들이 통제를 위반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희소한 노동을 얻기 위한 고용주들의 경쟁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우리가 본 화폐 임금률의 높이가 주어져 있을 때, 실질(real) 임금, 즉 임금 소득자들이 자기들이 버는 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재화들과 서비스들을 결정하는 것은 가격(prices)이다. 실질 임금은 그것이 임금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많이 가격에 의해서도 충분히 결정된다. 실질 임금은 오직 가격이 임금에 비해 떨어질 때에만 상승한다.

임금에 비해 가격을 떨어지게 하는 것은 노동 생산성, 즉 노동 단위당 산출물의 상승이다. 노동 생산성의 상승은 노동의 공급량에 비한 소비재의 더 큰 공급량과, 따라서 임금률에 비한 소비재의 더 낮은 가격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하여간 소비재의 공급량을 측정할 수 있다면, 노동 생산성을 두 배로 하는 것은 노동의 공급량에 비해 소비재의 공급량을 두 배로 하도록 작용할 것이고, 소비재와 노동을 살 각각의 똑같은 전반적인 지출에도 불구하고, 소비재의 가격은 똑같은 전반적인 평균 임금률에 직면하여 반으로 되는 것으로 귀착한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실질 임금률을 두 배로 할 것이다.

노동 생산성의 상승은 항상 실질 임금 상승에 필수적인 성분이다. 그것은 더 높은 화폐 임금의 원인이 되는 화폐량과 지출액의 증가가, 상승하지 않거나 임금과 같은 정도로 상승하지 않는, 가격을 동반하게 할 수 있는 그것이다. 그리고 노동 생산성의 상승의 원인이 되는 것은 사업가들과 자본가들의 활동들이다. 그들의 점진적인 혁신들과 자본 축적은 노동 생산성과, 따라서 실질 임금의 상승의 기초가 된다.

13) 마지막으로, 나의 마지막 요지는 100퍼센트 지급 준비, 귀금속 화폐 제도(one-hundred-percent-reserve, precious-metals monetary system)가 자본주의 사회를 인플레이션에서도 보호하고 디플레이션/불황에서도 보호할 것이라는 점이다. 귀금속들의 공급의 근소한 증가와, 따라서 그것에서 생기는 지출액의 근소한 증가율은, 자본주의 아래에서 그 귀금속들을 제외하고 실제적으로 모든 재화들의 생산과 공급이 증가하는 상당한 속도에도 불구하고, 가격들을 올릴 수 없을 것이다. 가격들은 그것들이 19세기 동안 그랬던 것처럼 필시 떨어지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증가된 생산 때문에 떨어지는 가격들은 디플레이션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것들은 평균 이윤율, 즉 투자된 자본에 대한 평균 수익률의 어떠한 감소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또한 빚을 갚는 더 큰 어려움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윤의 급락과 빚을 갚는 어려움의 갑작스러운 증가는 디플레이션/불황의 본질적인 징후들이다.

참으로, 100퍼센트 지급 준비, 귀금속 화폐 제도 아래에서 계속되는 화폐량과 지출액의 근소한 증가는 수익률에 긍정적인 성분을 추가하는 데, 그리고 빚 상환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 더 쉽게 하는 데, 이바지한다. 증가된 생산에 의해 야기되는 떨어지는 가격들은 이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화폐량과 지출액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생산 증가 때문에 가격들이 떨어질 때, 평균적인 판매자는 더 큰 판매 재화 공급량을 가격들이 낮아지는 것보다 더 큰 비율로 가질 입장에 있고, 따라서 더 적은 돈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입장에 있다.

진정한 디플레이션, 불황의 수반은 재정적 수축(financial contraction)―즉, 화폐량과/이나 지출액 감소―이다. 이것은 수익성을 없애 버리고 빚 상환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수축은 100퍼센트 지급 준비, 귀금속 화폐 제도가 막는 바로 그것이다. 그 제도는 그 수축을 막는데, 왜냐하면 일단 귀금속 화폐가 생기게 되면, 신용 수단(fiduciary media)을 발행하는 은행들이 파산할 때 신용 수단에 일어나는 것과 같이, 그것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의 증가율이 근소하기 때문에, 그것은 보유를 위한 화폐 수요에서 어떠한 상당한 인위적인 감소도 야기하지 않고, 그 다음 이것에는 화폐량 증가가 멈추거나 늦추어질 때 역전이 이어짐에 틀림없다.

또한 자본주의 아래에서 계속되는 지속적인 저축과 자본 축적도 자본 수익률을 줄이도록 작용하지 않는다. 화폐 소득에서 발생하는 명목 저축은 대개 화폐량과 지출액의 증가에 의해 높아진 수익률에서 발생하는데, 화폐량과 지출액이 근소하게 증가하기를 계속하는 한, 그 저축은 수익률을 줄이지 않는다. 만약 화폐량과 지출액의 증가가 없다면, 수익률은 더 낮아질 것이지만, 더 낮은 수준에서 안정될 것이다. 자본 축적은 그저 떨어지는 대체 가격들(replacement prices)을 기초로 하여서만 진행될 것이고, 불변의 지출액이 점진적으로 더 대량의 자본들을 살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저축의 역할은 전적으로 총계(gross) 수준에서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그것은 경제 체제가 소비재의 생산에 비한 자본재의 생산에 집중하는 정도와 생산 기간의 길이와 같은 중대한 문제들을 결정한다. 그러면 자본 축적에서 필수적인 성분들은 충분히 높은 상대적 자본재 생산과 충분히 긴 생산 기간으로서 드러나 있는데, 기술 진보와, 생산을 증가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그 밖에 다른 것, 무엇보다도, 경제적 자유와 더불어서 그렇다.

여기서, 시간이 다 되어, 나는 끝을 맺어야겠다. 만약 여러분이 오늘 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여겼다면, 여러분이 내가 논한 문제들을 나의 책에서 더 길고 자세하게 탐구할 것을 내가 희망한다는 말로써 나는 끝을 맺고 싶다. 그것의 전 골자는 자본주의의 자비로운 본질의 체계적인 해설로서 이해될 수 있다.


글쓴이) George Reisman

옮긴이)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Sooyoun Hwang is a former professor of public choice at Kyungsung University, Bus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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