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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년에 걸친 가격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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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노동과 임금법률 체계세계역사

04/12/2018

[Translated by Sang Hyeon Lee]

[1949년 3월 21일의 뉴스위크 칼럼으로, <경기 흐름: 헨리 해즐릿의 뉴스위크 시절(Business Tides: The Newsweek Era of Henry Hazlitt)>로 재발행되었다.]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보다 200년 더 오래된 것으로 이야기되는 서판(書板)들이 번역되었는데, 그것들은 고대 에슈눈나(Eshnunna) 왕국이 임금 통제와 가격 통제를 시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뉴스는 놀라움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원전 2000년보다 더 일찍 반포되었던 (1902년에 발굴된) 함무라비 법전 그 자체가 가격, 임금, 이자율, 그리고 수수료를 고정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격 통제를 적어도 약 4,000년의 연륜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문명의 진정한 경제적 발견은 자유 시장이었다. 애덤 스미스야말로 1776년에 출간된 <국부론>에서 그 당시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명백하게 시장 경제의 경이로움을 깨달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유로운 가격과 자유로운 이윤ㆍ손실의 체계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비유하였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 인위적으로 나라 전체의 복지를 증진하려 하는 것보다 그것을 더욱 효율적으로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기번(Gibbon)이 <로마 제국의 쇠망(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에서 다음과 같이 쓴 것도 역시 1776년이었다. “안티오크(Antioch)의 사치스러운 시민들이 가금류와 생선의 높은 가격에 대해 불평했을 때 ... 황제 율리아누스는 법적 권한으로 곡물의 가치를 고정시키는 매우 위험스럽고 의심스러운 조치를 위험을 무릅쓰고 시행했다. 그는 결핍의 시기에는 곡물이 가장 풍부한 시대에 좀처럼 알려져 있지 않았던 가격으로 팔려야 한다고 법령화했다. ... 그 결과는 예견되었을 수 있었고 곧 감지되었다. ... 토지나 곡물의 소유자들은 도시에 평소의 물량을 공급하지 않았고, 시장에 등장하는 소량은 비싸고 불법적인 가격에 은밀하게 팔렸다.”

율리아누스의 모험적인 시도 60년 전인 서기 301년에,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가격과 임금을 고정시키는 유명한 칙령을 반포했다. 고정된 가격을 초과하는 것에 대한 처벌은 사형이나 국외추방이었다. “칙령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수포로 돌아갔으며 실제 효과는 비참했다,”라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평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역사를 1793년으로 건너뛰어 보자. 1793년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들이 자기들 자신의 무분별한 지폐 남발의 결과를 상쇄해 보려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가격 최고한도를 부과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그것은 몇몇 측면에서는 우리의 물가 관리국(OPA: Office of Price Administration)보다 더 합리적이었다. 그 법률은 가격을 1790년보다 3분의 1 더 높게 허용하였다. 그것은 도매업자에게 5퍼센트의 이윤과 소매업자에게 10퍼센트의 이윤을 보태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나 앤드루 D. 화이트(Andrew D. White)가 1876년에 썼듯이, 최고가격 법률의 첫 번째 결과는 부과된 고정 가격을 회피하기 위한 모든 수단이 취해졌고, 농부들은 될 수 있는 한 적은 농산물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었다. 이것은 희소성을 증가시켰고, 대도시 사람들에게는 일정한 할당량을 받게 하였는데, 그들에게 공식가격에 즉시 필요한 생필품을 충당하도록 일정한 양의 빵이나 설탕이나 비누나 땔나무나 석탄을 얻을 권한을 주는 표(tickets)가 발행되었다.”

그러나 심지어 이러한 초기의 배급 제도에서도 법은 “시행될 수 없었다.” 가게 주인들은 “파산하지 않고는 그러한 재화를 팔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그만 두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래에서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자연스러운 핑계를 대면서 구매자들에게 막대한 요금을 지불하도록 강요했다. 이 핑계가 핑계만이 아니었다는 것이 단두대 형이 선고된 사람들의 일일 목록에 의해 쉽게 볼 수 있다. 이 목록에는 드물지 않게 최고 가격 법률들을 위반한 혐의로 고발된 사람들의 이름들을 볼 수 있다.” 일 년 조금 더 지나서 그 법은 폐지되어야 했다.

이 작은 역사의 교훈은 낯익은 것이다. 그것은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할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현대(modern)” 정부들이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진보주의자(progressives)”라고 부르기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고대 전체주의 장치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또한 경제적 자유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19세기에 살고 있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 통제주의자들은 자신이, 바빌로니아의 발견이 증명하듯이, 여전히 기원전 19세기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저자) 헨리 해즐릿 (Henry Hazlitt, 1894-1993)

헨리 해즐릿은 그의 많은 출판물들 가운데서도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그리고 <뉴스위크>에 경제 문제 관련 글을 쓴 유명한 언론인이었다. 그는 아마도 고전, <하나의 교훈의 경제학(Economics in One Lesson)>(1946)의 저자로 가장 유명할 것이다.

역자) 이상현 (경성대 외래교수)


Sang Hyeon Lee teaches public administration at Kyungsung University in Busan, South Korea.

The original Korean translation of this article can be found here.

Henry Hazlitt (1894-1993) was a well-known journalist who wrote on economic affairs for the New York Times, the Wall Street Journal, and Newsweek, among many other publications. He is perhaps best known as the author of the classic, Economics in One Lesson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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