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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문제 - 누구나 민주주의 작동에 참여하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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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Book Reviews

12/26/2019

(배진영 역)

[제이슨 브렌넌(Jason Brennan)의 저서 『민주주의를 반대하며 (Against Democracy),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6, 304 페이지』의 리뷰]

미국에서 자라다 보면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신앙심 다음으로 소중하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는다. 어린 학생들은 매일 아침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와 국기가 상징하는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한다. 프로미식축구리그(NFL: National Football League)는 군대에 대한 존경의 일환으로 (역주: 군복 모양의) 위장용 모자와 재킷을 입고서 사이드라인 위에서 몇 주에 걸쳐 행사를 한다. 군대의 역할은 무엇인가? 당연히 민주주의를 지키는 (심지어 확산시키는) 것이다. 작가이자 죠지타운(Georgetown) 교수인 제이슨 브렌넌(Jason Brennan)은 “민주주의 승리주의” 정신을 “민주주의와 대중적인 정치 참여가 가치 있고 정당화 되며 정의롭다는 견해”(7쪽)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책에서도 분명하게 밝혔듯이,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의 역사와 정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게 그것의 효능에 관해 진지하게 의심을 품은 사람은 지금까지 거의 없다. 브렌넌의 핵심 논지는 민주주의는 단지 도구적 가치로서만 유용하지 그 자체로는 상징적이고 본질적인 실질적인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마치 망치와 같은 도구일 뿐이라고 브렌넌은 되풀이해서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결과를 얼마만큼 달성해주는 가에 따라 평가될 뿐이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가 더 나은 망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11쪽). 브렌넌이 (역주: 민주주의 대안으로) 권고하는 체제는 에피스토크러시(epistocracy: 지식을 갖춘 이들의 통치(the rule of the knowledgeable))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 브렌넌은 영리하게도 다음과 같은 작가적인 시도를 약간 한다: “철학에서 우리가 어떤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논란이 가장 적고 가장 약한 전제(premise)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전략은 이 책의 첫 번째 주요 논점인 미국의 유권자들은 호빗(hobbits)이거나 훌리건(hooligans)이거나 벌칸(Vulcans)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상기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4~5쪽). 호빗은 무심하고 무지하며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며 일반적인 세상사와 정치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투표하지 않는 자의 전형이 호빗이다.”라고 브렌넌은 쓰고 있다. 나는 “가장 약한 전제”에 관한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확신한다. 왜냐하면 이 책의 처음부터 독자들은 그들의 호빗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브렌넌의 전제에 동의할 경향이 (가장 있을 법한 데) 높기 때문이다. 또는 독자들이 (덜 그러하겠지만) 그들 자신이 호빗이라고 규정하면서 “이것은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독자들은 그 개념의 용도에 확신할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미국인의 다수는 훌리건들이다. 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거나 투표한다. 훌리건들은 “정치의 스포츠 광팬들”이다. 그들의 견해는 약하고 편향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강하게 표출한다. 반대 측 견해가 아무리 정당할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실, 반대 측과의 논쟁은 그들 자신의 견해를 더욱 고수하게 만든다. 그들에게 정치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기 때문에, 그들은 승리하고 반대 측이 지기를 원할 뿐이다. 자신이 (마지막 범주인) 벌컨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이들 훌리건들을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다. 우리는 벌컨들을 철학자적 투표자들(philosopher-voters)이라 부를지라도, 그들은 플라톤의 철학자-왕들(philosopher-kings)[1]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들은 모든 정보를 편향되지 않게 취하고 반대 측 견해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결정은 반박할 수 있는 사실과 증거에 기반을 둔다. 우리는 벌컨들이 실제로 많지 않음을 안다. 그런 벌컨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민주주의 체제가 성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브렌넌이 1장에서 4장까지 인용하고 있는 풍부한 경험적 연구들이다. 그가 알아낸 주요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투표자들은 “이성적으로 무지하다,” 이것은 투표자들은 (역주: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며,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에 그들은 정말로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30쪽).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34쪽). 많은 정치 참여자들은 단지 (역주: 최근의) 정치에 “뒤처지지 않고자” 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사회적 계급이나 직업에 따라 (역주: 정치에 참여하기를) 요구받거나 그들은 특정 선거나 후보자에 상관없이 정치에 관심을 -그들에게 정치참여는 공예품 만들기나 정원가꾸기와 같은 취미이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35~36쪽). 정치적 부족주의(tribalism)는 합리성을 해치며 선택 자체의 타당성이 아니라 “우리 편(group)”에 기반을 둔 결정을 종종 하게 한다(39쪽). 나머지 부분의 정치적 문헌은 사실 너무 광대하다. 그러나 요약한다면, 평균적인 투표자는 부족주의적이거나 무지하거나 근시안적이거나 기타 등등이다. 그들은 정치참여를 의무로 느낀다. 투표자들은 시(poem)가 (도구적인 가치의 대치 개념으로)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시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5장). 이런 생각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태어날 때부터 강화되어 왔다. 브렌넌은 이것이 왜 그러한지 또는 왜 그러해야 하는지를 의아해 한다.

그러나 유권자보다 더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보편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에 가하는 더 큰 영향이다. 브렌넌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정치 참여는 사람들을 고상하게하고 교육시키는 것보다 부패하게 하고 바보스럽게 만들 개연성이 높다”(55쪽).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브렌넌에게 있어서, 대학 공동체가 올바른 조건이 주어진다면 “평판과 학문을 ... 증진시킬” 것으로 믿는 것과 같다(73쪽). 그는 헤로인 주사를 맞거나 고등학교를 중퇴하는 것이, 관념적인 민주주의처럼, 교육적 기능을 수행해줄 잠재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물론 우리는 그 시도의 지혜를 의심한다. 브렌넌은 그 밖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개인 투표는 중요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증오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언제나 부족(tribal) 편향성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투표할 동기를 갖고 있다”(234쪽, 볼딕체는 원문 그대로). 민주주의는 우리를 “진정으로 적대적 관계”로 밀어 넣는다. 우리는 정치 영역 밖에서는 결코 (희망적으로) 상종하지 않을 듯한 방식으로 서로를 대한다. 우리는 “그들이” 이기면 “나는”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선거권을 지닌 투표참여자로 이루어지는 양당(two-party) 체제는 이러한 승/패의 이분법 결과를 낳는 것이 확실하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개인 투표는 중요하지 않으며) 한 쪽이나 한 사람이 대체로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을 저격 대상으로 삼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에서 투표한다(240~241쪽 참조).

그러나 브렌넌이 보여주듯이, 이것은 “동의,” “자발적” 선택, 공정함, 그리고 민주주의 정의의 표시인 것으로 가정된다. 민주주의 대신 브렌넌은 좀 더 나은 망치: 에피스터크러시(epistocracy)를 제안한다(8장 참조). 우리는 가장 좋은 의사, 가장 좋은 배관공, 가장 좋은 선생, 등을 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가장 좋은 유권자 그리고 가장 좋은 통치자를 원하지 않아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나 배관을 수리하도록 내버려두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모두가 투표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론적으로 우리는 왜 누구나 통치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자격 원칙(competence principle)”을 위배한다. 브렌넌은 자격 원칙을 “상당한 이해관계가 걸린 정치적 결정들이 무능력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그 결정들은 불공정하고, 위법적이며, 권위가 결여되어 있다고 추정된다”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21쪽). 이처럼 민주주의는 통치하기에 부적격이다(적격 대(對) 부적격에 관해서는 165~166쪽을 참조하라). 우리의 의사나 배관공이 자격을 갖춘 자여야만 하듯이, 유권자나 통치자도 그러해야 한다. 브렌넌이 무정부주의(anarchism)를 결코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논점들을 깎아내리고 있지만, 나는 에피스토크러시가 이러한 정치적 자격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브렌넌의 제안을 어느 정도 확신한다.

브렌넌은 책 전체에 걸쳐 에피스터크러시가 어떻게 정부의 “더 나은 형태”가 되며, “더 나은 결과들을” 낳으며 그래서 전반적으로 “더 나은”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애기하고 있다(예를 들어, 223쪽. 5번째 단락을 참조하라). 그러나 내가 이해하기로는 브렌넌은 “더 나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결코 말하지 않고 있다. 더 효율적으로 세금을 거둘 수 있는지? 대중을 유순하게 유지하는 데 능숙한 것인지? 전쟁 수행에 더 나은 것인지? 브렌넌은 이에 관해 어떤 것도 말하려 하지 않겠지만, 그는 “더 나은” 시스템이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은 결과들이 무엇인지를 결코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에 반대하며(Against Democracy)』는 정치 철학을 위해 일독해야 할 강력하고도 예지적인 역작이다. 지금이야 말로 훌리건들에 의해 통치 받는 것을 중단해야 할 적절한 시점이다. 브렌넌은 민주주의를 “흠 많은 도구”라 부른다(204쪽).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민주주의는 의도적으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폭력적이며, 가장 기본적인 “정치” 단위인 개인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글쓴이) Kollin Fields

콜린 필즈는 역사전공 박사과정에 있으며 kollinfields.com을 운영하면서 자유주의 시각에서 전쟁, 정치 이론, 그리고 경제학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옮긴이) 배진영(인제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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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mises.org/wire/problem-democracy-letting-everyone-do-it

  • [1]. 미국에서 자라다 보면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신앙심 다음으로 소중하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는다. 어린 학생들은 매일 아침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와 국기가 상징하는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한다. 프로미식축구리그(NFL: National Football League)는 군대에 대한 존경의 일환으로 (역주: 군복 모양의) 위장용 모자와 재킷을 입고서 사이드라인 위에서 몇 주에 걸쳐 행사를 한다. 군대의 역할은 무엇인가? 당연히 민주주의를 지키는 (심지어 확산시키는) 것이다. 작가이자 죠지타운(Georgetown) 교수인 제이슨 브렌넌(Jason Brennan)은 “민주주의 승리주의” 정신을 “민주주의와 대중적인 정치 참여가 가치 있고 정당화 되며 정의롭다는 견해”(7쪽)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책에서도 분명하게 밝혔듯이,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의 역사와 정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게 그것의 효능에 관해 진지하게 의심을 품은 사람은 지금까지 거의 없다. 브렌넌의 핵심 논지는 민주주의는 단지 도구적 가치로서만 유용하지 그 자체로는 상징적이고 본질적인 실질적인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마치 망치와 같은 도구일 뿐이라고 브렌넌은 되풀이해서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결과를 얼마만큼 달성해주는 가에 따라 평가될 뿐이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가 더 나은 망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11쪽). 브렌넌이 (역주: 민주주의 대안으로) 권고하는 체제는 에피스토크러시(epistocracy: 지식을 갖춘 이들의 통치(the rule of the knowledgeable))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 브렌넌은 영리하게도 다음과 같은 작가적인 시도를 약간 한다: “철학에서 우리가 어떤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논란이 가장 적고 가장 약한 전제(premise)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전략은 이 책의 첫 번째 주요 논점인 미국의 유권자들은 호빗(hobbits)이거나 훌리건(hooligans)이거나 벌칸(Vulcans)이라고 간주하는 것을 상기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4~5쪽). 호빗은 무심하고 무지하며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며 일반적인 세상사와 정치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투표하지 않는 자의 전형이 호빗이다.”라고 브렌넌은 쓰고 있다. 나는 “가장 약한 전제”에 관한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확신한다. 왜냐하면 이 책의 처음부터 독자들은 그들의 호빗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브렌넌의 전제에 동의할 경향이 (가장 있을 법한 데) 높기 때문이다. 또는 독자들이 (덜 그러하겠지만) 그들 자신이 호빗이라고 규정하면서 “이것은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독자들은 그 개념의 용도에 확신할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미국인의 다수는 훌리건들이다. 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거나 투표한다. 훌리건들은 “정치의 스포츠 광팬들”이다. 그들의 견해는 약하고 편향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강하게 표출한다. 반대 측 견해가 아무리 정당할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실, 반대 측과의 논쟁은 그들 자신의 견해를 더욱 고수하게 만든다. 그들에게 정치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기 때문에, 그들은 승리하고 반대 측이 지기를 원할 뿐이다. 자신이 (마지막 범주인) 벌컨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이들 훌리건들을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다. 우리는 벌컨들을 철학자적 투표자들(philosopher-voters)이라 부를지라도, 그들은 플라톤의 철학자-왕들(philosopher-kings)[1]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들은 모든 정보를 편향되지 않게 취하고 반대 측 견해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결정은 반박할 수 있는 사실과 증거에 기반을 둔다. 우리는 벌컨들이 실제로 많지 않음을 안다. 그런 벌컨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민주주의 체제가 성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브렌넌이 1장에서 4장까지 인용하고 있는 풍부한 경험적 연구들이다. 그가 알아낸 주요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투표자들은 “이성적으로 무지하다,” 이것은 투표자들은 (역주: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며,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에 그들은 정말로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30쪽).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34쪽). 많은 정치 참여자들은 단지 (역주: 최근의) 정치에 “뒤처지지 않고자” 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사회적 계급이나 직업에 따라 (역주: 정치에 참여하기를) 요구받거나 그들은 특정 선거나 후보자에 상관없이 정치에 관심을 -그들에게 정치참여는 공예품 만들기나 정원가꾸기와 같은 취미이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35~36쪽). 정치적 부족주의(tribalism)는 합리성을 해치며 선택 자체의 타당성이 아니라 “우리 편(group)”에 기반을 둔 결정을 종종 하게 한다(39쪽). 나머지 부분의 정치적 문헌은 사실 너무 광대하다. 그러나 요약한다면, 평균적인 투표자는 부족주의적이거나 무지하거나 근시안적이거나 기타 등등이다. 그들은 정치참여를 의무로 느낀다. 투표자들은 시(poem)가 (도구적인 가치의 대치 개념으로)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시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5장). 이런 생각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태어날 때부터 강화되어 왔다. 브렌넌은 이것이 왜 그러한지 또는 왜 그러해야 하는지를 의아해 한다.  

    그러나 유권자보다 더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보편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에 가하는 더 큰 영향이다. 브렌넌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정치 참여는 사람들을 고상하게하고 교육시키는 것보다 부패하게 하고 바보스럽게 만들 개연성이 높다”(55쪽).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브렌넌에게 있어서, 대학 공동체가 올바른 조건이 주어진다면 “평판과 학문을 ... 증진시킬” 것으로 믿는 것과 같다(73쪽). 그는 헤로인 주사를 맞거나 고등학교를 중퇴하는 것이, 관념적인 민주주의처럼, 교육적 기능을 수행해줄 잠재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물론 우리는 그 시도의 지혜를 의심한다. 브렌넌은 그 밖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개인 투표는 중요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증오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언제나 부족(tribal) 편향성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투표할 동기를 갖고 있다”(234쪽, 볼딕체는 원문 그대로). 민주주의는 우리를 “진정으로 적대적 관계”로 밀어 넣는다. 우리는 정치 영역 밖에서는 결코 (희망적으로) 상종하지 않을 듯한 방식으로 서로를 대한다. 우리는 “그들이” 이기면 “나는”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선거권을 지닌 투표참여자로 이루어지는 양당(two-party) 체제는 이러한 승/패의 이분법 결과를 낳는 것이 확실하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개인 투표는 중요하지 않으며) 한 쪽이나 한 사람이 대체로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을 저격 대상으로 삼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에서 투표한다(240~241쪽 참조).  

    그러나 브렌넌이 보여주듯이, 이것은 “동의,” “자발적” 선택, 공정함, 그리고 민주주의 정의의 표시인 것으로 가정된다. 민주주의 대신 브렌넌은 좀 더 나은 망치: 에피스터크러시(epistocracy)를 제안한다(8장 참조). 우리는 가장 좋은 의사, 가장 좋은 배관공, 가장 좋은 선생, 등을 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가장 좋은 유권자 그리고 가장 좋은 통치자를 원하지 않아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나 배관을 수리하도록 내버려두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모두가 투표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론적으로 우리는 왜 누구나 통치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민주주의는 “자격 원칙(competence principle)”을 위배한다. 브렌넌은 자격 원칙을 “상당한 이해관계가 걸린 정치적 결정들이 무능력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그 결정들은 불공정하고, 위법적이며, 권위가 결여되어 있다고 추정된다”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21쪽). 이처럼 민주주의는 통치하기에 부적격이다(적격 대(對) 부적격에 관해서는 165~166쪽을 참조하라). 우리의 의사나 배관공이 자격을 갖춘 자여야만 하듯이, 유권자나 통치자도 그러해야 한다. 브렌넌이 무정부주의(anarchism)를 결코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논점들을 깎아내리고 있지만, 나는 에피스토크러시가 이러한 정치적 자격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브렌넌의 제안을 어느 정도 확신한다.

    브렌넌은 책 전체에 걸쳐 에피스터크러시가 어떻게 정부의 “더 나은 형태”가 되며, “더 나은 결과들을” 낳으며 그래서 전반적으로 “더 나은”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애기하고 있다(예를 들어, 223쪽. 5번째 단락을 참조하라). 그러나 내가 이해하기로는 브렌넌은 “더 나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결코 말하지 않고 있다. 더 효율적으로 세금을 거둘 수 있는지? 대중을 유순하게 유지하는 데 능숙한 것인지? 전쟁 수행에 더 나은 것인지? 브렌넌은 이에 관해 어떤 것도 말하려 하지 않겠지만, 그는 “더 나은” 시스템이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은 결과들이 무엇인지를 결코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에 반대하며(Against Democracy)』는 정치 철학을 위해 일독해야 할 강력하고도 예지적인 역작이다. 지금이야 말로 훌리건들에 의해 통치 받는 것을 중단해야 할 적절한 시점이다. 브렌넌은 민주주의를 “흠 많은 도구”라 부른다(204쪽).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민주주의는 의도적으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폭력적이며, 가장 기본적인 “정치” 단위인 개인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Author:

Kollin Fields

Kollin Fields is a PhD student in history, and may be reached at kollinfields.com where he writes on libertarian topics including war, political theory, and economics. He resides with his family in Dallas, Tex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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