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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어떻게 사용자와 비조합원의 권리를 침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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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노동과 임금

07/09/2019

[Translated by Yisok Kim (김이석) chief editorial writer for Asiatoday, Seoul, Korea.]

전국노동관계법(NLRA: National Labor Relations Act)은 법원의 역할을 넘어섬으로써 미국 노사관계에 기념비적 변화를 가져왔다. 1935년 미 의회가 NLRA를 제정하기 전에는 노동조합을 조직하기가 어려웠다. 법원이 일반적으로 노조활동에 반대하고 노조활동을 사용자(employer)의 재산권에 대한 침해로 보았기 때문이다.

공모(共謀), 법원의 노동가처분 명령(Injunctions) 그리고 반독점

1935년의 노동관계법(NLRA) 이전에는 형사법상의 공모 혐의가 때때로 노동조합에 제기되었다. 판사들이 집단행동을 사회에 불법적이거나 유해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Commonwealth 대 Pullis, 1806 판례 참조1]. 법원은 또한 파업을 끝내기위한 수단으로 노동가처분 명령(labor injunctions)을 내렸다. 유명한 판례가 ‘Vegelahn 대 Guntner(1896년 매사추세츠)’2의 경우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케팅(picketing)이 본질적으로 위협적이고(intimidating) 강압적이어서(coercive) 강제로 금지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여기에서 ‘연방정부 대 헌트’(매사추세츠, 1842)3 판례의 법리를 따랐는데, 그 법리란 파업의 공모와 합의가 그 차제로는 범죄가 아니지만 노동조합은 합법적인 수단으로 합법적인 목적을 추구해야한다는 것이다. [홈즈(Oliver Wendell Holmes) 판사가 Vegelahn 사건에서 이런 법리에 반대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서 법원은 1890년의 셔먼법(Sherman Act)이 노동조합의 2차 활동(노동조합이 그들의 원래 사용자가 아닌 여타 당사자에 대해 보이콧하도록 선동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노조에 대해 독점금지법을 적용해서 집행하기 시작했다. 연방대법원은 Danbury Hatters 사건[Loewe v. Lawlor (1908)4]에서 독점 금지법 적용을 승인했다.

1914년의 클레이턴법(Clayton Act)은 노동가처분 명령(labor injunctions)의 사용을 제한함으로써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반독점법의 적용을 제한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클레이턴법의 노조활동에 대한 보호를 좁게 해석하고 보통법의 “합법적인 목적-수단”이라는 테스트를 반독점에 통합함으로써 ‘Duplex Printing Press Co. v. Deering (1921)’5 사건에서 여전히 노조에 불리하게 클레이턴법을 해석하였다.

초기 노동입법

노동조합은 “진보의 시대”(Progressive Era)로 알려진 번영하고 있던 1880년대 이후에6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득세하지 못했다. 법원이 노조활동의 주요 장벽임을 깨달은 노동조합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같은 첫 번째 입법 시도가 철도 산업의 노조 설립을 촉진시킨 1898년의 에드먼법(Erdman Act)이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의 일부가 연방대법원에 의해 ‘Adair 대 미국연방정부’(1908)7) 재판에서 무력화(無力化)되었다. 의회는 결국 철도와 항공 산업의 노동조합을 규율하기 위해 1926년 ‘철도노동법’(the Railway Labor Act)을 제정했다.

1932년의 ‘노리스-라가디아법’(Norris-LaGuardia Act)은 더 폭 넓은 노조 설립을 머릿속에 그린 최초의 법안이었다. 이 법은 대부분의 “노동분쟁”에서 연방법원이 노동가처분 명령을 내리는 것을 금지했으며, 법원에서 “노란 개” 계약을 시행할 수 없게 했다. (‘노란 개’ 계약이란 사용자가 고용인으로 하여금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을 것을 동의하면서 서명하도록 요구한 노동계약서를 말한다. 사용자가 ‘노란 개’ 계약을 했던 이유는 그 계약의 위반이 있으면 사용자가 노조에 대항해서 법원의 노동가처분 명령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의 노동가처분 명령은 역사가 우즈(Thomas E. Woods)가 아래에서 설명하듯이8), 흔히 주장되는 것과는 달리 이 시기에 통상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노동 경제학자 실베스터 페트로(Sylvester Petro)는 1880년에서 1932년까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결과, 법원의 노동가처분 명령이 매우 드물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방대법원이 노동가처분 명령을 내린 것은 모든 작업 중지(work stoppage)의 1%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주(州)법원이 노동가처분 명령을 내린 것도 모든 작업 중지의 ​​2% 미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수의 노동가처분이 내려진 경우에도 노동조합 활동 자체를 저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신과 재산에 대해 가해지는 폭력을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사용자의 권리에 대한 이러한 보호조차—그렇다. 사용자도 권리를 가지고 있다!—그 이후에는 사라지게 되는 상황이었다.

노리스-라가디아 법(Norris-LaGuardia Act)은 또한 1890년의 셔먼 반독점법(Shantman Antitrust Act)을 적용받던 노동조합에 대해 이 법의 적용을 면제시켰다. 그렇지만 〈노리스-라가디아 법〉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정도로 노조에 유리하지는 않았다. 의회는 1933년에 전미산업회생법(NIRA: National Industrial Recovery Act)와 같은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Schechter Poultry 대 U.S. (1935)7에서 NIRA가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헌적으로 위임한 것이고 의회의 권력이 상업조항(the Commerce Clause)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의 위반이라고 판결함으로써 NIRA를 무효화시켰다.

1935년 전국노동관계법

미 의회는 1935년에 전국노동관계법[일명 와그너법(Wagner Act)]을 통과시켰다. 연방대법원은 ‘NLRB 대 Jones & Laughlin Steel8 회사’(1937) 사건10)에서 의회가 주(州)간 상업에—비록 간접적이라도 해도—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그 어떤 활동도 규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이 새로운 노동입법을 “합헌‘으로 인정했다.

이 사건은 1937년 4월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 대통령이 그의 법안의 승인을 위해 연방대법원을 확대하겠다고 위협한지 불과 2개월 만에 결정되었다. 1937년 3월, 판결의 향방을 결정할 두 판사들 즉 오웬 로버츠와 찰스 에반스 휴즈 판사는 대통령의 (NLRA와 사회 보장법 포함한) 뉴딜 입법을 허용하는 쪽으로 리버럴들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대법원 판사) 9명을 구한 적기(適期)의 입장 전환”(the switch in time that saved nine)이라고 알려진, 이러한 연방대법원의 입장 전환으로 인해 루즈벨트는 (대법관 숫자를 늘려) 연방대법원을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가득 채워 넣는 계획을 실행할 필요가 없었다.

NLRA의 ​​명시된 목적은 (공공부문 노조들이 아닌 민간 부문에서의) “산업 평화를 증진”이었다. 그 법안은 노동조합을 구성할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함으로써(9장) 그리고 사용자에 의한 "불공정한 노동관행"을 금지함으로써(10조) 산업평화를 달성하고자 했다. NLRA는 노동관리관계법(Labor Management Relations Act)[일명 Taft-Hartley법]에 의해 1946년 수정되었으며, 트루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의회에 의해 과반수로 뒤집혔다.

Taft-Hartley법은 NLRA를 개정하여 2차 보이콧을 포함해서 노동조합의 “불공정한 노동관행”을 추가했다. 또한 Taft-Hartley법에서는 주정부가 노조안정협약(union security agreement)을 금지하고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노조안정협약’이란 사용자와 노동조합이 노조의 대표성의 이익을 위해 비조합원들에게 최소한의 조합비를 지불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말한다.) NLRA가 노동조합을 강화했던 반면 태프트-하틀리법은 노조가 구사할 수 있는 전술(tactics)을 크게 축소시켰다.

결사의 자유, 누구를 위한 것인가?

많은 노조 지지자들은 근로자의 단결권(right to associate)을 보호하기 위해 NLRA가 필요하다고 NLRA를 변호했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확실히 단결할 자유를 가지지만 단지 단결만으로는 노동조합이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재산권과 비노조원의 권리들에 간섭할 수 있을 경우에만 노조활동이 위력을 발휘한다.

NLRA는 다음의 세 법적 원리들을 가지고 사용자의 권리와 비노조원의 권리를 침해한다. (1) 배타적인 노동조합의 대표성, (2) 의무적 협상, (3) 보호받는 피케팅과 파업. 각 원리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논의한다.

NLRA에 따르면, 50퍼센트 이상의 피사용자가 노조에서 투표하면, 그 노조는 비(非)지지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직원을 배타적으로 대표한다.11 (노조는 조합원들만을 위한 노조이길 선택할 수도 있지만, 거의 항상 배타적인 대표성을 선택한다.) 이렇게 되면 처음 결성된 노조와 경쟁 할 수 있는 다른 노조가 존재할 수는 없다.

또한 노조는 종종 안정협약을 사용자와 체결한다. 즉, 비노조원들도 그들을 대신하는 노조의 협상에 드는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노조에 부분적인 수수료를 지불해야한다는 협약을 체결한다. (그런 수수료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비노조원들이 무임승차자(free rider)12가 될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Taft-Hartley는 주정부가 (즉 소위 “노동의 권리” 법에서) 그러한 안정협약을 금지하는 조항을 통과시키는 것을 허용했다. 이제 (공공부문에서의 안정협약을 금지한) 2018년 〈야누스 대 AFSCME〉 판결13과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주정부들의 수의 증가에 따라 노동조합의 배타적인 대표성은 아마도 위협을 받을 것이다.

노조가 결성되면 모든 피고용자를 대신하는 배타적 독점적 대표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사용자는 그 노조와 선의로 교섭할 의무가 있다. [이를 의무적 교섭(mandatory bargaining)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사용자가 노동조합과 협상할 것을 강요하기 때문에 NLRA의 ​​주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다. 합의에 도달할 필요는 없지만 사용자는 교섭에서 “선의의”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선의’에 대한 기준은 NLRA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노동관계위원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가 결정한다.) 결국 정부가 사용자들로 하여금 노조를 인식하고 대응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이다. 노조 지지자들은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다른 당사자들의, 즉 사용자와 비노조원들의 결사의 자유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인가?

독점 가격 및 스트라이크

배타적 대표성과 의무 교섭은 사용자가 노동조합에 반드시 응대하도록 강제되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노조가 원하는 모든 고용 혜택들을 누리게 되지는 않는다. 사용자는 협상에서 “선의의” 노력을 하면서도 여전히 노동조합의 요구를 충족시키기를 거부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따라서 노동조합의 옹호자들이 “경제적 무기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사용하여 사용자에게 압력을 가해야한다. 이 무기들 중 가장 파괴적인 것이 파업이다.

노조원들이 충족되지 않은 요구로 인해 일하기를 거절한다면, 사용자들은 분명히 이것을 불편하게 느낀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그들의 자리를 기꺼이 차지하고자 하는 대체 근로자를 찾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노조가 “녀석”(scab)이라고 부르는) 대체 근로자들이 노조원들의 작업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조원은 그들의 요구가 충족될 때까지 일하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비노조원이 노조원을 교체하지 못하도록 사용자의 재산에 피켓 라인을 만든다(picket). 노조는 대체 근로자가 피켓 라인을 넘지 못하도록 폭력에 의존할 때가 많다. 이코노미스트 토마스 디로렌조(Thomas DiLorenzo)는 어떻게 경쟁자에 대한 폭력이 항상 노동조합에 내재해왔는지 이렇게 설명한다.14

역사적으로 노조가 무(無)노조의 자유 시장에서 스스로 교섭해서 얻을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임금을 밀어올리기 위해 시도했던 주요한 “무기”는 파업이었다. 그러나 파업이 효력을 발휘하고 노동조합이 조금이라도 발언권을 가지려면, 경쟁자들을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어떤 형태로든 이들에게 강요나 폭력을 사용해야했다.

노동조합의 강제는 노동에서의 경쟁, 즉 비노조원 근로자를 겨냥한다. 디로렌조(DiLorenzo)는 이렇게 말한다. “따라서 파업은—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노조는—노조와 경영진간의 갈등이라기보다는 더 많이 노조원 근로자와 비(非)노조 근로자 사이의 갈등을 대변한다.”

신학자 대브니(Robert Lewis Dabney)는 NLRA보다 44년 이전인 1891년의 파업이 가진 이러한 역할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 “파업 시스템의 진정한 논리는 이것이다: 공급과 수요라는 보편적 경제법칙의 정당한 영향력을 공격해서 이를 지배하려는 강제적인(forcible) 시도다. … 노동조합은 억압적인 사용자에 대항하는 공모(共謀)라기보다는 동료 시민과 동료 노동자에 대한 공모다.” (“The Labor Union, the Strike and the Commune” in Discussions, vol. 4, p. 298) 이것은 법원이 파업을 금지할 수 있었던 시절에서였다. 그러나 NLRA 덕분에 이제 파업은 법적으로 선호되는 행동이 되고 말았다.

NLRA는, 사용자가 파업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을 금지하고 또 가능하면 파업 근로자의 일자리를 복원하도록 요구함으로써, 노조의 파업을 보호한다. 이것은, 사용자가 제공한 임금에 일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의 일자리를 복원해야할 법적 의무를 그 사용자에게 지게 하는 터무니없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머레이 로스바드(Murray Rothbard)가 말하듯이15, “그들의 견해는 아무튼 노동자가 자신의 직업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사용자가 파업 노동자들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것을 불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아무도 미래에 ‘일자리에 대한 권리’를 가지지는 않는다. 계약해서 이미 수행한 근로에 대해서만 지불을 받을 권리가 있을 뿐이다. 아무도 그의 사용자의 주머니에 그의 손을 영원히 넣을 ‘권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권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재산에 대한 체계적인 절도일 뿐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경쟁하는 노동자의 공급을 제한하는 것, 이것이 노조가 피고용자의 임금을 올리는 방식이다. 노동조합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 아니라 비(非)노조 노동을 시장으로부터 몰아냄으로써 임금을 인상한다. 게리 노스(Gary North)가 설명하듯이, 노동조합은 독점적 가격 책정에 의존한다.16

독점적 가격책정의 경제학은 모든 현대 노동조합주의의 기초다. 이 사실은 노동조합의 지지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하다고 간주하고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당신이 노조에 대한 지지자인 동시에 사업 독점을 지지하는 사람을 찾으려고 한다면, 아마도 수일을 애써 봐도 헛고생일 것이다. 그렇지만 노조나 사업의 독점에 내재된 경제학은 동일하다. 이용-가능한 직업에 대한 경쟁자의 진입을 배제시킴으로써 노동조합은 노조원들에 대한 더 높은 임금을 달성한다. 다시 말해 배제된 사람들은 차선으로 간주하는 직종에서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들이 시장에서 주요한 부담자다. 노조 내부자들이 시장 임금보다 더 높은 임금을 누리는 데 따른 가장 무거운 가격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노동조합이 실제로 조합원들의 임금을 올린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노동에 대한 독점적 가격 책정을 하게끔 강제에 의존하기 때문에 노조는 다른 근로자의 희생이라는 값을 치르면서 이를 달성한다. NLRA는 사용자와 비노조원을 보호하지는 않고 그 대신 파업과 피케팅에 내재된 폭력적 행동을 보호한다.

NLRA(전국노동관계법)의 폐지

노조 지지자들은 종종 노동자들의 부족한 “협상력”을 사용자와 동등하게 만들기 위해 노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용자와 근로자 간의 동등하지 않은 “협상력”에 대한 이 주장에는 결함이 있다. 근로자는 특정 직장에서 취업 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 경우 교섭력을 갖는다. 사용자들은 더 높은 임금을 제공함으로써 최고의 근로자를 유치하려고 서로 경쟁한다.

토마스 E. 우즈(Thomas E. Woods)는 NLRA 이전의 시기에 임금 상승의 측면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 없었지만 잘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17 “노동 역사가들과 노동 운동가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다음과 같은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당황할 것이다. 즉, 왜 노동조합주의가 수치적으로 무시할 정도에 불과했고 (즉, 미국 노동력의 터무니없이 작은 부분인 3%만 1900년 무렵 노조에 가입했다.) 또 (노동시장에 대한) 연방 규제가 거의 없었던 시절에 제조업에서의 실질 임금이 미합중국에서 1860-1890년 사이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인 50%나 증가했고, 1890-1914년 사이에는 37%나 증가했는가? 혹은 왜 미합중국 노동자들이 그들보다 훨씬 심하게 노조화가 진행된 유럽의 노조원들보다 훨씬 더 잘 살았는가? 노동 역사가나 노동운동가들 대부분은 이 불편한 진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이에 대처하는 것 같다.”

경제적 번영을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지 않다. 노동조합이 실제로 (조합원들의) 임금을 인상시키지만, 강제적 수단을 통해 그리고 경쟁을 희생시키면서 그렇게 할 뿐이다. 사용자의 재산권과 비노조원의 권리에 대한 노조의 침해를 보호해주는 NLRA와 같은 특별한 입법이 없이는 노조가 (노조원의 임금 인상에도)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미합중국에서 노동조합이 쇠퇴하고 있고, 많은 주들이 노동조합을 약화시킬 ‘일할 권리’법을 통과시키고 있다는 좋은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사용자의 재산권과 비노조원들의 결사의 자유를 복원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NLRA가 사용자로 하여금 정부의 명령으로 노조와 협상할 의무를 지운 것은, 노조의 배타적 대표성 그리고 파업 근로자의 해고 금지와 함께, 자유 사회에서는 설 자리가 없는 그런 것이다. (이를 바로잡을) 유일한 해결책은 NLRA의 폐지뿐이다.


글쓴이) Zachary Garris

재커리 개리스는 웨인주립대학교 법대(Wayne State University Law School)의 법학박사(Juris Doctor)와 개혁 신학교(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MS)의 신학(Master of Divinity)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그는 《Dabney on Fire: A Theology of Parenting, Education, Feminism, and Government》의 편집자이자 《KnowingScripture.com》 및 《TeachDiligently.com》에 기고하고 있다.


옮긴이) 김이석(아시아투데이 논설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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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chary Garris holds a Juris Doctor from Wayne State University Law School and a Master of Divinity from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Jackson, MS). He is editor of Dabney on Fire: A Theology of Parenting, Education, Feminism, and Government  and writes at KnowingScripture.com and TeachDiligent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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