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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어떻게 인간 협동을 촉진하는가

Tags 자유시장간섭주의기타 학파

02/19/2018Ludwig von Mises

[Translated by Sooyoun Hwang. (황수연 역)]

[1968년 독일어로 최초 출판]

모든 종의 동물들과 식물들에 대해 생존 수단은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생물의 사활적 이익은 자기 자신의 종의 모든 구성원들의 그것과 무자비하게 대립된다. 오직 인간만이 이 조화되지 않는,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갈등을 협동에 착수함으로써 극복하는 방법을 안다. 분업의 원리 아래 수행되는 작업의 더 높은 생산성은 식량의 희소성으로 야기되는 냉혹한 대립을 의도적으로 공통 목적을 겨냥하는 사람들의 이익들의 결속으로 대체한다. 상품들과 서비스들의 평화적인 교환, 시장 과정은 사람 사이의 관계의 표준적인 유형이 된다. 당사자들의 상호 합의는 폭력에의, 강자의 법칙(law of the stronger)에의 호소를 대체한다.

협동 대 폭력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이 방법(그리고 이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의 본질적인 결함은 그것이 모든 인간의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협동에 달려 있고 어떤 개인의 비협조에 의해서든 좌절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 인간사(人間事)에 대한 폭력적인 간섭을 제거하는 데는 더 강력한 폭력에 호소하는 것 외에는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폭력에 호소하고 있거나 계약에서 생기는 자기의 의무를 준수하고 있지 않은 개인들이나 개인들의 집단들에 대해서 폭력적인 행동에 호소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쓸모없다. 자발적인 합의의 시장 체제는 상호 합의의 조건과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지 않은 개인들에 대해 폭력에 호소할 준비가 되어 있는 강압과 강제의 장치가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작동될 수 없다.

그 용어의 가장 넓은 의미에서 시장(market)이란 사람들이 하는 모든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행동들을 포함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인간 주도권(initiative)과 자유(freedom)의 영역이고 모든 인간 업적들이 성장하는 토양이다.

국가, 즉 파괴적으로 폭력에 호소하는 것에 대비해 시장을 보호하는 권력은, 강제와 강압의 냉혹한 장치이다. 그것은 명령과 금지의 체계이고, 그것의 무장된 머슴들은 항상 이런 법률들을 집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 국가가 하는 무슨 일이든 그것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 국가 권력은 자기의 신민들에게 피라미드와 기타 기념물들, 병원, 연구소, 그리고 학교를 건설하도록 강제했다. 국민들은 이 업적들을 보고 그것들의 입안자들을 높이 찬양한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 권력이 파괴한 건물들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또한 결코 건설되지 않은 구조물들도 보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정부는 개개 국민들이 그것들을 건설하려고 예정했던 수단을 세금으로 거두어 가버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민들과 그들의 통치자들의 친국가주의(pro-statist) 혹은 오늘날 말하듯이 친사회주의(prosocialist) 열광에는 실제적으로 한계가 없다. 거의 어느 누구도 만약―대중적으로 “경제의 공공 부문(public sector of the economy)”이라고 불리는―국가 권력의 어떤 확대가 제안된다면 이의를 제기할 만큼 충분히 용기가 있지 않다. 기업들의 더 많은 사회화로의 진행을 늦추고 대부분의 분야들에서 거의 중단시키는 것은 거의 모든 국유화 및 시유화(市有化(municipalization) 모험사업들의 명백한 재정적 실패이다. 이런 면에서, 미국 우정 공사(US Post Office)를 참조하는 것은 오늘날의 사회 철학과 경제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의 잘 알려진 비효율과 그것의 막대한 재정 적자는 국가, 즉 폭력적 행동의 사회적 장치에 의한 업무 수행의 미덕에 관한 대중적 우화를 파괴한다.

폭력의 옹호 논거를 평화적인 협동의 옹호 논거에 대항해 정직하게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폭력의 옹호자들은 자기들이 호소하는 폭력 및 폭력의 위협의 방식들을 “비폭력(nonviolence)”이라고 부르는 속임수에 호소하고 있다. 두드러진 사례가 노동조합주의(labor unionism)의 사례이다. 그것의 본질적인 절차는, 다양한 종류들의 폭력적인 행동의 사용이나​1) 그러한 행동의 위협의 사용은, 기업들이 노동조합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들은 군사 용어 “피케팅(picketingㆍ보초병을 배치하기)”에 “평화적인(peaceful)” 함축을 주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것을 적용하는 바로 그 방식에, 그것은 맹목적인 폭력으로 죽이고 파괴할 의향을 포함하고 있다.

상호 평화적인 합의의 영역과 강압 및 강제의 영역 사이의 근본적인 대립은 경제의 두 “부문(sectors),”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에 관한 쓸데없는 이야기로 근절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약(constraint)과 자발성(spontaneity) 사이에 화해는 없다. 이집트의 파라오나 페루의 잉카의 전체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시도는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되어 있다. 그리고 폭력은 “비폭력(nonviolence)”으로 개명(改名)된다고 해서 자기의 반사회적 특성을 잃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창조한 모든 것은 자발적인 인간 협동의 산물이었다. 폭력이 문명에 기여한 모든 것은 그것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잠재적인 평화 파괴자들을 억제하는 노력에 제공하는―확실히 필수 불가결한―서비스에 존재한다.

사회주의 계획

서양 문명은 자유(liberty)를 최대의 선(善ㆍgood)으로 인정하고 있고 항상 인정했다. 서양의 역사는 독재에 반대해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기록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개발되었고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 유럽인들에 의해 부활된 개인의 자유의 사상은 19세기에는 심지어 동양의 후진적인 사람들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낙관론자들은 다가오는 자유와 평화의 시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정반대였다. 자연 과학들과 그것들의 기술적 활용에 매우 성공적이었던 19세기는 전체주의 국가를 인간 역사의 궁극적인 설계도로 묘사한 사회적 교리들을 낳았고 대중화하였다. 급진적인 무신론자들뿐만 아니라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인들도, 시장 경제를 모든 악들 가운데서 최악으로서 헐뜯으면서, 시장 경제를 거부했다. 자본주의가 경제적 노력의 생산성을 선례가 없을 정도로 증가시켰고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일반 대중의 생활수준이 해마다 향상된 동안, “피착취 계급들(exploited classes)”의 피할 수 없는 점진적인 궁핍화라는 마르크스의 교리는 다툴 여지가 없는 교의로서 받아들여졌다. 자칭 지식인들은, 자기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라고 부르는 것을 갈망하면서 그리고 얻으려고 몹시 애쓰면서, 모든 위대한 자유 옹호자들의 노력을 계속하는 체한다.

우리 시대의 사회적 및 정치적 이상은 계획(planning)이다. 더 이상 개인들은 자기들이 사회적 협동의 체제에 통합되는 방식을 선택할 권리와 기회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사회의―즉, 국가의, 경찰권의―최고 관청이 발하는 지시들에 따라야 할 것이다. 요람에서 관(棺)까지 모든 사람은 “계획(plan)”의 작성자들에 의해 자기가 행동하도록 지시되는 바로 그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지시들은 자기가 받을 임금뿐만 아니라 자기의 교육과 자기의 일자리의 장소와 종류도 결정할 것이다. 그는 받는 지시에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입장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체제의 기초가 되는 철학에 따르면, 계획 당국 혼자만이 그 지시가 “사회적으로(socially)” 가장 바람직한 업무 수행을 위한 자기의 계획에 부합되는지 아닌지 알 입장에 있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총체적 노예 상태(total enslavement)는 사회주의 관리(管理)의 그저 우연한 부수적인 현상만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회주의 체제의 본질적인 특징, 어떤 생각할 수 있는 종류든 사회주의 업무 수행의 바로 그 효과이다. 사회주의 입안자들이 자본주의를 “생산의 무정부 상태(anarchy of production)”라고 낙인찍고 모든 권한과 권력을 “사회(society)”에 이전할 것을 요구했을 때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계획에 따라 자유롭게 살든지 위대한 신국(神國ㆍgod state)의 계획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든지 둘 중 하나다.

사회주의자들이 오늘날 자신을 “좌파(leftists)”라 부르고 제한된 정부와 시장 경제의 옹호자들을 “우파(rightists)”라고 깎아내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좌(left)”와 “우(right)”라는 이러한 용어들은 어떠한 정치적 의미도 잃었다. 유일하게 의미 있는 구분은 시장 경제와, 그것의 계(系)로서, 제한된 정부의 옹호자들과 전체주의 국가의 옹호자들 사이의 구분이다.

인간 역사에서 처음으로 소위 지식인들의 과반수와 모든 다른 계급들과 집단들의 사람들의 태반 사이에 완전한 의견 일치가 있다. 열정적으로 그리고 맹렬하게 그들 모두는 계획을―즉, 자기들 자신의 총체적 노예 상태를―원한다.

개인의 자유와 시장 경제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은 그것이 자기의 구성원들의 주도권과 책임에 할당하는 활동의 영역이다. 개인은 자기가 자기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면서 자기의 동료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 한 자유롭고 최고이다. 시장에서 그는 소비자의 자격에서 주권적이다. 정부 영역에서 그는 투표자이고 이 자격에서 주권적인 입법자의 일부이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시장의 민주주의는 동류이다. 마르크스의 용어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이다. 전제 정치가 사회주의의 상부 구조이듯이, 대의 정부는 시장 경제의 상부 구조이다.

시장 경제는 여러 가지의 생각할 수 있고 가능한 인간의 경제적 협동의 체제들 중 하나인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소비자들에게 가능한 최상이면서 가장 값싸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확고한 경향이 수(繡)놓아진 사회적 생산 체제를 수립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이 논문은 처음 독일어 번역으로 <스위스 월간지(Schweizer Monatshefte)> 제48권 제1호, 1968년 4월, pp. 13-16에 발표되었다. 이 영어판은 처음 <경제적 자유와 간섭주의(Economic Freedom and Interventionism)>(1980)에 출판되었다.


저자) Ludwig von Mises

미제스에 관해서는 미제스와이어 홈페이지 오스트리아학파 4대 거장 참조.

역자)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Dr. Sooyoun Hwang is a former professor of public choice at Kyungsung University, Busan, Korea.

Link to the article on MisesWire Korea can be found here.

  • 1. Roscoe Pound, Legal Immunities of Labor Unions (Washington, D.C., American Enterprise Association, 1957) 참조.
Author:

Ludwig von Mises

Ludwig von Mises was the acknowledged leader of the Austrian school of economic thought, a prodigious originator in economic theory, and a prolific author. Mises's writings and lectures encompassed economic theory, history, epistemology, government, and political philosophy. His contributions to economic theory include important clarifications on the quantity theory of money, the theory of the trade cycle, the integration of monetary theory with economic theory in general, and a demonstration that socialism must fail because it cannot solve the problem of economic calculation. Mises was the first scholar to recognize that economics is part of a larger science in human action, a science that he called praxe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