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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융성

Tags 자유시장세계역사

12/29/2017Robert Higgs

[Translated by Sooyoun Hwang. (황수연 역)]

거의 전 기간의 인간 역사 내내, 물질적 궁핍과 고질적 불안이 표준이었다. 심지어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오늘날 서양에서 “가난한(poor)”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육체적 안락을 주는 것들(creature comforts)과 소비자에게 기쁨을 주는 것들(consumer delights)을 누릴 수 없었다. 때때로, 어떤 주민들은―아마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그리고 송 왕조(960-1279) 동안 중국에서―다소 더 잘 살았지만, 그런 사례들은 예외적이었다.

14세기에 이를 때까지, 중국인들은 아마도 어떤 많은 인구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누렸을 것이다. 마르코 폴로가 자기의 죽음의 자리에서 밝혔듯이, 설사 그가 자기가 보았던 것의 절반을 서술하지 못했을지라도, 13세기 후반부에 유럽인들이 중국에 관한 마르코 폴로의 기술(記述)을 맞이한 놀람을 상기해 보라.1

중세 시대가 기울게 됨에 따라, 유럽인들이 더 빨리 경제적으로 진보하기 시작한 반면, 중국인들은 경제적 정체에 빠지게 되었다. 더욱더 놀랍게도, 유럽의 경제적 에너지는 북이탈리아의 큰 상업 중심지들에서 벗어나서 북서유럽의 문명의 변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야만인들(barbarians)이 어찌된 일인지 경제적 진보의 비밀을 우연히 만났던 것 같이 보였다. 이후, 많은 차질들에도 불구하고, 서유럽 사람들은―그리고 후에 북아메리카에 있는 그들의 식민지 사촌들도 마찬가지로―꾸준히 인간 무리를 앞섰다. 18세기까지는 그들은 세계의 더욱 후진적인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인들을 훨씬 능가하였는데, 20세기 후기까지 간격은 계속해서 벌어졌다.

서양은 어떻게 경제적 진보의 지속을 발생시키는 데 성공하였는가? 역사가들과 사회과학자들이 다양한 가설들을 제시하였지만, 지금까지 어떤 단일의 설명도 일반적인 수용(受容)을 얻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해답의 일정 요소들은 넓은 동의를 얻었다. 기독교 교리에 근거한, 서양 문화의 개인주의(individualism)의 증대가 현저하게 기여했던 것 같다.2 덧붙여서, 전성기 중세 시대와 초기 근대 시대에 유럽 제(諸)국민들의 정치적 분열(political fragmentation)―수백 개의 별도의 관할들을 가진 정치적 다원주의―은 제도적 및 기술적 실험을 촉진했고, 이것에 의해 기업가들은 노동과 자본을 더욱 생산적이게 하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활력의 지속에 근본적인 것은 사적 재산권(private-property rights)의 지위가 점진적으로 향상된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노력과 투자의 과실을 손에 넣을 합리적인 전망에 의존할 수 없는 한, 그들은 열심히 일하거나 물적, 인적, 그리고 지적 자본을 축적할 유인을 거의 혹은 전혀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축적이 없이는, 경제적 진보의 어떠한 진행도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사적 재산권이 그저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않았다. 대개, 상인들은 서유럽의 분열된 지배 계층을 구성한 노상강도 귀족들(robber barons)과 야심만만한 왕들(aspiring kings)을 돈으로 매수함으로써 그러한 권리들의 보호를 획득했다.

극단적으로, 상인들은 자기들의 경제 활동을 떠받치는 법적 제도들에 대해 자기들이 완전한 통제를 행사할 수 있었던 도시 국가들에서 정치적 독립을 확립했다. “유럽 문명이 도시 국가 단계를 통과했다는 사실은,” 존 힉스 경에 따르면, “유럽의 역사와 아시아의 역사 사이의 분기(分岐)에 대한 주요 열쇠다.”3 중세 시대 후반에, 베니스, 제노아, 피사, 그리고 플로렌스가 앞장섰다. 후에, 브뤼주(Bruges), 앤트워프(Antwerp), 암스테르담, 그리고 런던이 앞장섰다. 성시(城市) 자신의 민병대는 성시의 정치-경제적 자치권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성시를 방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기들의 사업을 쉽게 하기 위해, 상인들은 자기들 자신의 법체계를 개발했다. 빠르고, 비용이 덜 들고, 공정한 상사 분쟁 해결을 제공할 생각으로, 이 상관습법(lex mercatoria)은 현재까지 살아남은 제도들과 선례들을 수립했는데, 그것은 지금 중재 절차에서 대안적인 (비국가) 분쟁 해결의 거대한 체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4 몇몇 나라들에서는, 상인들과 제조업자들은 자기들의 관습적인 법적 제도들을 국가 시행 법률에 끼워 넣는 데 궁극적으로 자기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사용했다. 유럽의 정치적 분열 때문에, 상인들에게 생활을 너무 어렵게 만든 정부들은 상인들과 그들의 사업―과 과세 표준―을 경쟁 관할들에게 잃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러한 상실의 전망은 통치자들을 자극하여 자기들의 약탈을 억제하게 하고 상인들에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허용하게 하였다.5

안전한 사적 재산권의 추구에서 한 정부 대비 다른 정부를 잘 이용할 수 있었던 유럽(과 후에는 미국)의 상인들과 대조적으로, 중국의 상인들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제국 정부에 의해 이루어지는 피할 수 없는 엄중 단속을 겪었다. “1500년까지는 [대문자] 정부(Government)는 두 개를 넘는 돛대를 가진 배를 건조하는 것을 사형죄로 만들었고, 1525년에는 [대문자] 정부는 모든 외양 항해선들의 파괴를 명령했다.” 따라서 수세기 동안 대외 상업이 막대했고 멀리 미쳤던 중국은 “빈곤, 패배 그리고 퇴보에 이를 항로를 단독으로 정했다.”6 많은 다른 해로운 행동들 가운데서, 청나라 상급 관리에 의해 지배되는 정부는 “전 중국에 걸쳐 시계와 수력으로 움직이는 산업 기계 장치의 개발을 정지시켰다.”7

이슬람 세계에서도, 제국 정부는 사적 재산권을 보호하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자의적인 규칙들과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경제적 진보를 억눌렀다.8

20세기에는, 소비에트 제국이 마찬가지로 경제적 진보의 지속에 필요한 경제적 자유를 완전히 억누른 하나의 커다란 나쁜 생각―중앙 경제 계획(central economic planning)―을 부과하는 정책을 수용했다. 불행하게도, 중국 공산주의자들, 동유럽 사람들, 그리고 제3세계의 많은 식민지 독립 후의 정부들은 경제적 파멸에 이르는 그 길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SSR)을 따라갔다.

오늘날에는, 마침내, 거의 모든 사람이 경제적 자유와 경제 성장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었고 사적 재산권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모든 곳에서 정부들은 특권 추구자들(privilege seekers)에게 경제에 대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옭아매는 것들(choke holds)을 계속해서 부여한다. 역사가 확인하듯이, 모든 경제적 진보의 전제 조건이 조금씩 저해되어 파괴되지 않도록, 사적 재산권은 끊임없는 방어를 필요로 한다.

[이 논문은 최초 2002년 7월 ≪자유인(Freeman)≫에 실렸다. 콜린 허시(Colin Hussey)가 내레이션을 한, 이 논문의 MP3 오디오 파일은 다운로드에 이용할 수 있다. 다음 링크 참조: https://mises.org/library/rise-west-1]


저자) Robert Higgs

로버트 히그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 참조: https://mises.org/profile/robert-higgs


Dr. Sooyoun Hwang is a former professor of public choice at Kyungsung University, Bus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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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존 허버드(John Hubbard), <마르코 폴로의 아시아(Marco Polo’s Asia)>.
  • 2. 디퍽 랄(Deepak Lal), ≪의도되지 않은 결과: 요소 부존, 문화, 그리고 정치가 장기 경제성과에 미치는 영향(Unintended Consequences: The Impact of Factor Endowments, Culture, and Politics on Long-Run Economic Performance)≫ (Cambridge, Mass.: MIT Press, 1998), pp. 75-97; 마이클 노박(Michael Novak), <기독교는 어떻게 자본주의를 창조했는가(How Christianity Created Capitalism)>,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1999년 12월 23일.
  • 3. 존 힉스(John Hicks), ≪경제사의 이론(A Theory of Economic History)≫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9), p. 38.
  • 4. 예를 들면, 국제 상업 회의소(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국제 중재 법원: 국제 분쟁 해결 서비스(International Court of Arbitration: International Dispute Resolution Services)>를 보라.
  • 5. 네이선 로젠버그(Nathan Rosenberg)와 L. E. 버드젤, 주니어(L. E. Birdzell, Jr.), ≪서양은 어떻게 부유하게 되었는가: 산업 세계의 경제적 변환(How the West Grew Rich: The Economic Transformation of the Industrial World)≫ (New York: Basic Books, 1986), pp. 114-15, 121-23, 136-39.
  • 6. 니컬러스 D. 크리스토프(Nicholas D. Kristof), <1492: 전편(1492: The Prequel)>, ≪뉴욕 타임스 매거진(New York Times Magazine)≫, 1999년 6월 6일, p. 85.
  • 7.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이상적인 조직 형태(The Ideal Form of Organization)>,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2000년 12월 12일.
  • 8. 랄(Lal), pp. 4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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