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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와 타협의 여지가 있는가?

Tags 자유시장기타 학파

12/27/2018Ludwig von Mises

[Translated by Haeng-Bum Kim (김행범 역)]

[『인간행동(Human Action, 1949)』에서 발췌]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시장경제 혹은 자본주의)와 생산 수단의 공적 소유(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혹은 “계획” planning)는 선명하게 구분된다. 사회의 경제조직에 관한 이 두 체제는 각각 정밀하고도 명확하게 기술되고 정의되어져 있다. 그것들은 결코 서로 혼동될 수도 없고, 뒤섞이거나 결합될 수도 없으며, 한 체제가 다른 체제로 점진적으로 전이해 갈 수 없고, 그것들을 환질(換質. obversion)한 명제는 서로 모순관계에 놓이게 된다(주: ‘환질’. obversion은 논리학에서 명제의 당초 의미를 유지하면서 긍정 명제를 부정으로, 혹은 부정 명제를 긍정으로 바꾸는 것이다. 예컨대, ‘모든 동물은 생물이다’라는 명제를 환질하면 ‘어느 동물도 생물 아닌 것이 아니다’가 된다. 환질한 것이 모순적이란 뜻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공적 소유가 동시에 성립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동일한 생산 요소에 대해서는 오직 사적 통제인가 아니면 공적 통제인가 라는 것만이 있을 따름이다.

만약 어떤 사회협력 체제에서 일부 생산 수단만이 공적 소유이고 나머지는 사적 소유라면, 이것으로 사회주의와 사적 소유권을 결합하는 혼합체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사회주의화된 부문이 사회주의화 하지 않은 부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양자가 철저히 따로 노는 존재가 되는 것(이 경우 자본주의 및 사회주의의 두 체제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다)이 아니라면, 그 체제는 시장 사회로 남아 있는 것이다.

사적 소유 기업들 및 시장이 존재하는 체제 안에서 작동하는 공적으로 소유된 기업들과, 재화와 서비스를 비(非)사회주의 국가들과 교환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은 시장경제 체제 속에 포함된다. 그것들은 시장 법칙에 따르며 경제 계산에 따를 기회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두 개의 체제 옆 혹은 두 체제 사이에 노동 분업에 따라 제3의 인간 협력 체제를 설정하는 걸 고려한다면, 그것은 사회주의부터가 아니라 오직 시장경제 관념으로부터만 출발할 수 있다. 선택하고 행동의 취할 수 있는 권력을 한 사람에게 주는 엄격한 일원주의(monism) 및 중앙집권주의(centralism)를 가진 사회주의의 관념은 타협이나 양보를 전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 구조는 어떤 조절이나 변경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장경제 체제는 이와 다르다. 여기서는 시장과, 강제 및 억압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 권력의 이원주의는 다양한 생각들을 낳을 수 있다. 사람들은 정부가 시장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이 진정으로 절대적이거나 상책인가? 라고 묻는다. 시장 활동을 간섭하고 교정하는 것이 정부의 임무 아닌가? 자본주의의 대안, 혹은 사회주의를 꾹 참고 있을 필요가 있는가? 공산주의도 아니고 또 순수하고도 간섭받지 않는 시장경제도 아닌, 실현가능한 다른 사회조직 체제가 아마 있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사람들은 사회주의와도 또 자본주의와도 거리가 멀다고 주장된 다양한 제 3의 사회체제 해결책들을 고안해왔다. 그 주장자들은 이 체제들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권을 유지하려고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적인 것도 아니며, 또 시장경제의 “결점들”(deficiencies)을 없애기 때문에 자본주의적인 것도 아니라고 내세운다.

관련 문제들을 과학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모든 가치판단들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하고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어떤 모습들을 결점이 있다거나 해롭다거나 또는 불공정하다고 비난하지 말 것이 요구되는데, 간섭주의(interventionism)를 이렇게 감성적으로 권고하는 것은 문제의 과학적 처리에 무익하다. 경제학의 임무는 진리를 분석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어떤 선입견 및 편견에 근거하여 칭송을 하거나 반대를 하는 것은 필요 없다. 간섭주의에 관해 묻고 또 거기에 답을 해야 할 유일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작동되는가?

간섭주의 (interventionism)

사회주의의 실현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유형은 레닌 혹은 러시아식 유형이라 할 수 있는데 순전히 관료주의적인 것이다. 모든 공장, 상점 및 농장들은 공식적으로 국유화(verstaatlicht)되며, 그것들은 공무원들에 의해 운영되는 정부 부서들이다. 생산기구의 모든 단위들은 우체국과 우정사업본부장의 관계와 똑 같은 식으로 상급의 중앙조직과 관계를 맺고 있다.

두 번째 유형은 힌덴부르크 혹은 독일식 유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명목상 또 표면적으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유지하고 통상적인 시장, 가격, 임금 및 이자율의 외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기업가들(entrepreneurs)은 없고 단지 상점 관리자(shop manager. 나치의 법률 용어로는 ‘공장지도자’ Betriebsführer)만 있다.

“정부의 핵심적 모습은 구타, 살해 및 투옥으로 그 법령을 집행하는 것이다.” 이 상점 관리자들은 겉으로는 그들에게 맡겨진 기업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그들은 사고팔고, 노동자를 채용하고 해고하며, 그들의 업무에 대해 급여도 주며, 채무 계약을 맺고, 이자를 지불하고 채무를 상환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활동에서 정부의 최고생산관리부서에서 나온 명령들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이 기관(나치 독일의 ‘제국 경제장관’ Reichswirtschftsministerium)은 상점 관리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지, 어떤 가격으로 누구로부터 구입을 할지, 어떤 가격으로 누구에게 팔지를 지시한다. 그것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그 일자리를 배정하며 그의 임금을 정한다. 그것은 자본가들이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자신의 자금을 맡겨야 하는가를 명령한다. 시장에서의 교환은 가짜일 뿐이다. 모든 임금, 가격 및 이자율은 정부에 의해 정해진다. 그것들은 단지 표면상으로만 임금, 가격, 이자율이다. 실은 그것들은 모든 시민의 일자리, 소득, 소비 및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정부 명령을 수량적 용어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정부는 모든 생산 활동을 지시한다. 상점 관리자들은 소비자의 수요 및 시장의 가격 구조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정부에 종속되어 있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겉으로는 자본주의 용어 하에 위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몇몇 명칭들이 남아 있지만 그것들은 시장경제에서와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사회주의와 간섭주의의 혼동을 막기 위해 이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간섭주의’ 체제 혹은 ‘통제받는 시장경제’ 체제는 그것이 여전히 시장경제라는 점에서 독일식 사회주의 유형과는 다르다. 정부 당국은 시장경제의 작동에 간섭하지만 시장을 몽땅 없애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생산과 소비가 통제받지 않는 시장에 의해 정해지는 것과는 다른 식으로 전개되기를 원하며, 또 시장질서의 작동 속에 명령(commands)과 금지(prohibitions)를 집어넣음으로써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를 원하는데 그 명령 및 금지의 집행을 위해 경찰 권력과 폭력적 강제 및 강압 기구들이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개별적인(isolated) 간섭 행위들이다. 그것들을 결합하여 모든 가격들, 임금들 및 이자율들을 결정하는 통합된 체제로 만들고 그리하여 생산과 소비의 완전한 통제를 당국의 손아귀에 두려는 것이 정부의 목표는 아니다.

통제받는 시장경제 체제 혹은 간섭주의는 한편으로는 정부 활동과,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제 체제 하의 경제자유라는 이원적 영역의 구분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 체제의 특징은 정부는 생산수간의 사적 소유권을 보전하고 폭력적 침해로부터 그것을 보호하는 것에 정부 활동을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명령과 금지라는 수단으로 사업의 운영에 간섭한다.

간섭(intervention)은 강제 및 강압적 행정기구를 관장하고 있는 정부 당국에 의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발동된 포고인데, 그것은 기업가 및 자본가들로 하여금 그들이 시장의 지시에만 따르고 있었더라면 취했을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부 생산요소들을 사용하도록 강요한다. 그러한 포고는 무엇인가를 하라는 명령이 될 수도 있고 뭔가를 하지 말라는 명령이 될 수도 있다.

그 포고가 기존의 잘 확립되고도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어떤 기관 자체에게서 나온 것일 필요는 없다. 몇몇 다른 기관들이 마치 그들이 그런 명령과 금지를 발하고 자신이 보유한 폭력적인 강제 및 억압기구로 그것을 집행할 권한이 있는 것처럼 사칭할 수도 있다. 만약 공식적인 정부가 그런 절차들을 허용하거나 심지어 정부의 경찰 권력의 행사로 그것을 뒷받침해준다면 정부 그 자신이 마치 애초에 그런 행동을 취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만약 정부가 다른 기관의 폭력적 행동에 반대하지만 자신의 무력으로 그것을 억제하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비록 정부가 무정부를 진압하고자 할지라도 결과적으로는 무정부상태가 나타난다.

정부 간섭은 늘 폭력적 조치 혹은 그런 조치의 위협을 의미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란 결국 무장한 사람들, 경찰, 헌병, 군인, 교도관들 및 사형집행인들의 동원이다. 정부의 핵심적 모습은 구타하고 죽이고 투옥하여 그 법령들을 집행하는 것이다. 더 많은 정부 간섭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결국 더 많은 강제 및 더 적은 자유를 요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 Ludwig von Mises

미제스(1881~1973)는 20세기 오스트리아 학파의 대표적 학자로 자유와 시장의 가치를 역설해왔다. 이 글은 그의 명저 『인간 행동』(Human Action)의 Ⅲ권 27장 중 ‘제 3의 체제라는 생각’, ‘간섭주의’ 부분이다. 『화폐와 신용의 이론』(The Theory of Money and Credit), 『사회주의』(Socialism), 『자유주의』(Liberalism), 『경제정책』(Economic Policy), 『반자본주의 정서』(The Anti-Capitalistic Mentality)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지금도 그의 사상은 각국의 대학 및 연구 기관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Haeng-Bum Kim is professor of public choice at Pusan National University,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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